자포니즘부터 인상주의까지 … 도쿄와 파리가 공유한 '아름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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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전유신의 벨 에포크지금 일본의 도쿄를 방문한다면 어렵지 않게 벨 에포크 시기의 미술을 만나볼 수 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는 ‘트리오: 파리, 도쿄, 오사카의 모던 아트 컬렉션’이 개최 중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도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제작된 서양의 회화와 조각을 볼 수 있다. 일본에 가면 서양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이는 벨 에포크 시대부터 버블 경제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프랑스 미술을 열심히 수집해 온 덕이다. 오늘은 일본과 프랑스, 두 나라가 공유했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트리오: 파리, 도쿄, 오사카의 모던 아트 컬렉션’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 그리고 파리 시립미술관의 근대미술 컬렉션 150여 점을 선보인다. ‘도시와 사람들’, ‘광고와 모던 걸’, ‘도시의 산책자’ 등 공통의 키워드 34개를 선정해 전시를 구성했다. 예를 들어, ‘모델의 파워’라는 주제에서는 모딜리아니, 마티스, 그리고 일본 작가 요로즈 테츠고로의 작품을 비교해 소개한다. 20세기 초부터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세 미술관이 소장한 서양과 일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20세기 초의 파리에는 마쓰카타와 같은 컬렉터뿐 아니라 일본인 작가들이 300여 명 가까이 유학하고 있었다. 일본 미술가들의 파리 유학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급감했다가 1920년대에 들어서 다시 급증했다. 1927년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던 일본인 사업가 사츠마 지로하치가 파리 대학에 일본관(Maison de Japan)을 건립해 기부하고, 일본과 프랑스의 국제 교류와 유학생 후원을 주도하기도 했다. 20세기 초부터 프랑스와 일본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된 셈이다.
20세기 초의 파리에 이처럼 일본인 예술가와 컬렉터들이 많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당대의 파리가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미술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 시기의 미술은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들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외국인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에콜 드 파리가 함께 만들어낸 산물이다.
1990년에는 다이쇼와 제지 회장이었던 사이토 료헤이가 고흐의 대표작 ‘가셰 박사의 초상’과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사들이는데 2000억 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사이토는 자신의 사후에 이 작품들을 같이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가 전 세계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자 유언을 철회하는 웃픈 해프닝도 발생했다. 벨 에포크 시기의 명화를 구입하는데 엄청난 돈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던 사이토 회장의 아름다운 시절은 그가 1993년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되고 3년 뒤 사망하면서 끝을 맺었다. 일본의 버블 경제 시대가 막을 내린 것도 이즈음이다.
20세기 초 자포니즘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일본의 컬렉터들은 이 시기에 파리에 머물며 벨 에포크 시기의 미술품을 수집했다. 아름다운 이 시절의 추억을 반추하듯 버블 경제 시기 일본의 컬렉터들은 인상주의 미술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때 구입된 미술품 중 일부는 일본 내 여러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미술관을 방문해 서양의 명화들을 접하게 된다면 프랑스와 일본이 공유했던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면서 작품을 감상해봐도 좋을 것이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