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고향에 돌아가 옛날처럼 살자꾸나, 제발 그녀를 잊고

[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베르디 오페라 中 '프로벤차 내 고향'
베르디 하면 떠오르는 맨 앞의 오페라가 바로 '라 트라비아타'라고 할 수 있다. 1853년, 40세 때 작품. 과거에는 춘희(椿姫)라고 많이들 줄여 불렀다. 이유는 원작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La Dame aux Camélias)에서 비롯한다. 여주인공이 동백꽃을 상징하기에 여기서 착안해 쓰바키히메(つばきひめ), 즉 ‘춘희’로 새긴 것. 그러나 椿은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를 의미하기에 동백으로 바꿔 ‘동백 아가씨’로 했다가 가요와 또 겹쳐 오페라 원제목인 ‘라 트라비아타’로 정착되었다. 과거 ‘춘희’는 우리나라 최초로 상연된 오페라이기도 하다. 1948년 광복 3년 후였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 /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버려진 여인⸱방황하는 여인⸱길 잃은 여인’이란 뜻. tra가 '사이에', via가 '길'. 즉, 길이 아닌 사잇길에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주인공 비올레타의 불길하게 어긋난 운명을 은유한다. 비올레타의 직업은 코르티잔(Cortesan). 14세기부터 대략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활동한 고급 매춘부⸱정부(情婦)를 뜻한다. 이들의 고객은 왕⸱귀족⸱권력자⸱부자들이었다. 잘 알려진 줄거리. 화려한 파티가 진행 중이다. 청년 알프레도의 눈에 한 여성이 눈부시게 빛난다. 드레스에 동백꽃을 꽂고 있는 여인 비올레타였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동거하게 되나,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 제르몽이 나타난다.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와 헤어질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그녀는 사랑을 뒤로하고 그의 말을 따른다. 그 와중에 지병인 결핵은 심해지고, 알프레도는 죽은 비올레타를 부둥켜안고 흐느낀다.
'라 트라비아타' 제1막의 파티 장면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막에서 제르몽은 비올레타가 파리 근교 살림집을 비운 사이 들이닥친 알프레도에게 당부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옛날처럼 살자꾸나.’ 모든 바리톤의 로망이며 필수 레퍼토리인 ‘프로벤차, 내 고향/ Di Provenza il Mar, il Suol’이다.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울림을 주는 아리아. 가사는 이렇다.

“가슴 속 깊은 곳, 우리 고향/ 프로방스의 바다와 땅을 어떻게 잊겠니/ 작열하던 태양의 찬란한 빛을 기억하렴/ 고향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도/ 다정하고 평화로운 햇살은 프로방스, 우리 고향밖엔 없으리”“신이여! 저는 아들을 제대로 이끌어 왔습니다/ 아들아! 나의 고통을 너는 모를 것이다/ 네가 떠난 후 우리 집은 절망이었다/ 아비의 하소연이 부디 네게 닿기를/ 신이여 도와주소서”
이탈리아 바리톤 티토 곱비 / 사진출처. 구글 포토
수많은 바리톤이 이 노래를 불렀다. 그중 티토 곱비(Tito Gobbi,1913~1984,伊)의 1955년 버전을 좋아한다. 이유는 곱비야말로 테너 바리톤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프로벤차 내 고향’은 아버지의 애정이 담긴 애틋한 아리아다. 육중한 베이스 바리톤은 안 맞는다는 생각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자라스트로나 ‘후궁 탈출’의 바사 젤림, 오펜바흐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속의 사탄 다페르투토 같은 역이 둔중한 베이스 바리톤으로 제격이다. 대개 왕⸱악마⸱사제⸱괴물 등의 역할이다.
티토 곱비(제르몽)와 마리아 칼라스(비올레타)와(위) 알프레도를 설득하는 제르몽(아래)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네이버 포토
곱비는, 물론 힘차게 내지를 때도 있지만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톤을 유지하면서 배역에 빙의된 듯 노래한다. 약음(弱音,piano) 테크닉이 특히 돋보이는데 강한(forte) 고음과 대비되는 은은한 아름다움이다. 계몽시대 작가이자 과학자인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Georg Christoph Lichtenberg,1742~1799)의 유명한 말이 있다. “변변치 못한 정치가, 그리고 성악가에겐 약음이 없다.”티토 곱비의 특별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막판 반주 없이 부르는 카덴차(cadenza)다. 카덴차는 보통 협주곡(concerto) 악장의 끝부분에서 독주자가 자신의 연주력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실 그 시작은 성악의 몫이었다. 바로크 시대 때는 가수들이 반주 없이 뽐내며 기량을 펼쳤던 것. 티토 곱비가 여기서 남다르다. 명반들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면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바이에른 가극장 오케스트라 연주, 1973년 판을 들겠다.
'라 트라비아타' 명반(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바이에른 가극장 관현악단 연주 음반) /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티토 곱비의 '프로벤차 내 고향']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