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과연 인간과 똑같이 시를 쓸 수 있을까 ... AI 실험가 두 작가가 묻다

서울국제도서전 특별 강연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과 시인 심보선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AI시대의 예술'
지난 26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특별 강연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AI시대의 예술'에 참석한 시인 심보선(왼쪽부터),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 그리고 사회를 맡은 서울대학교 교수 홍성욱.
"과연 인공지능(AI)이 인간처럼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서울국제도서전의 개막일이었던 지난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C홀 한쪽에서는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홍성욱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의 사회로 시작된 강연. AI와 창작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두 작가가 50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 대담을 나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 중 한 명인 권병준과 예술사화학자로도 활동하는 시인 심보선이다.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두 작가는 모두 자신의 예술에 AI를 결합한 실험을 해 왔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졌다. 이날 서울국제도서전이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AI 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펼칠 강연에 이 두 작가를 선정한 이유다. 권병준은 AI와 로봇을 결합한 설치작품을 내놓으며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의 주인공이 됐다. 심보선도 AI를 활용해 텍스트 생산 연구를 오랜 기간 이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가장 먼저 'AI가 인간처럼 창작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내놨다. 고개를 끄덕인 후 "AI는 모사의 달인"이라고 입을 뗀 권병준. 그는 "이제 AI가 하는 작업과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예술가로 치부하지 못하게 됐다"며 "웬만한 퀄리티의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를 거쳐 공식을 가지고 뽑아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특별 강연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AI시대의 예술'에 참석한 시인 심보선(왼쪽부터),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 그리고 사회를 맡은 서울대학교 교수 홍성욱.
심보선은 조금 다른 시각을 들려줬다. 그는 자신이 챗GPT를 가지고 시를 번역해 본 실험을 예로 들었다. 한충자의 '무식한 시인'이라는 시를 가져와 '영어로 번역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70대에 한글을 배운 한 시인이 쓴 구절을 AI는 완벽히 번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경험을 토대로 그는 AI가 완벽하게 인간이 생산하는 그것과 똑같은 작품을 만들어내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백남준이 주장한 '기술의 인간화'에 대해서도 토론이 벌어졌다. 백남준은 "기술을 없애서 기술의 침입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기술을 하나의 인간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먼저 권병준은 이에 대해 "포기했다"는 다소 자조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기술, 특히 인공지능은 데이터로 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불가사리와도 같기 때문에 인간이 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인간은 결국 불안하고 불완전한 예술을 추구해야 기술의 세계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특별 강연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AI시대의 예술'에 참석한 시인 심보선(왼쪽부터),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 그리고 사회를 맡은 서울대학교 교수 홍성욱.
심보선은 '인간이란 게 과연 절대 선인가'에 대해 역으로 질문했다. "언제부턴가 무조건 인간이 기술보다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없게 됐다"며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문학을 통해 이뤄지는 폭력을 다수 목격하며 인간화가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날 현장에서는 참여한 관객과 사회자, 두 작가 간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당초 예정됐던 강연 시간인 1시간 30분이 모자랄 정도였다. 주어진 강연 시간이 끝나갈 무렵, 두 작가가 관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AI가 쓴 문학의 비중이 커질 텐데, 여기 서울국제도서전에 온 독자들은 과연 그 작품을 진정으로 원할까"라는 것. '바둑이 예술의 영역인 줄 알았는데, 알파고를 만나고 나니 기술이었더라'며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처럼, 하나 둘 예술을 기술로 느끼며 떠나는 작가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달라는 당부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