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노래 들으면 총살·'오빠' 말투도 처벌…참혹한 北 인권

북한인권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유지태 씨가 27일 통일부 청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북한 주민들이 남한 노래나 영화를 감상하고 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됐다는 진술이 전해졌다. 북한 당국은 또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검열해 '남한 말투'를 사용하는지조차 단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의 동의 없는 생체실험이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통일부는 27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4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고 설명회를 열었다. 통일부는 2017년부터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실상을 담은 북한인권보고서를 비공개로 발간해오다가 지난해 이를 처음으로 대외에 공개했다. 지난해 보고서엔 2017~2022년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 3412명을 면담한 자료를 바탕으로 탈북민 508명의 사례가 담겼다. 올해 보고서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141명의 증언을 추가해 총 478쪽 분량으로 만들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북한 당국은 2020년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기반으로 외국 문화를 접하는 주민들을 처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탈북민 A씨는 "법 시행 이후에는 남한 드라마를 시청만 해도 교화소로 끌려가고, 이를 최초에 들여온 사람은 무조건 총살당한다"면서 "22세 청년이 남한 노래 70여 곡과 영화 3편을 보고 유포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감시의 강도도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주민들은 말투까지 통제당하고 있다. 휴대전화 주소록에 'OO아빠' '오빠' 'OO님' 'OO쌤' 같은 호칭으로 상대방을 저장하거나, '~해요' '빨리 와' 같은 어투를 사용하면 '남한 말투'라며 단속당하기 일쑤다. 지난해 탈북한 한 여성은 이날 설명회에서 "김정은 정권은 이제 교양 단계를 넘어 '실천' 단계가 됐다"며 "거슬리는 게 보이면 '반역자'로 낙인찍어 바로 처형한다"고 회상했다.

북한에서는 결혼식 때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는 행위도 처벌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반동사상문화'로 규정돼 있다. 김정은이 공식 석상에서 종종 선글라스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주민들은 통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해외로 파견된 노동자에 대한 인권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주민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해외 파견 노동자로 선발되기를 기다리지만, 노동 환경은 열악한 상황이다. 한 증언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매일 16~17시간을 일하고, 휴일은 1년에 단 2일 뿐이다. 40명가량이 좁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목욕시설이 없어 세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무자비한 인권 침해도 자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탈북민은 국경 봉쇄조치 접경 지역 70m마다 한 명씩 총알 60발을 장전한 경비대원이 배치됐고, 철조망에는 고압 전류가 흘렀다. 한 증언에 따르면 코로나19 격리시설에 수용된 주민들의 목욕 요청을 받아준 당 간부들이 재판도 없이 총살되기도 했다.

당연히 신체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한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체실험장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 탈북민은 "저희 매형은 군 복무 중에 광견병이 걸린 개에게 물렸는데, 처음에는 ‘49호 병원’(정신병원)에 입원됐다가 계속 도망가자 ‘83호 병원’으로 보냈졌다"면서 "‘83호 병원’에 보내지면 생체 실험에 동원되는데, 곧 83호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사망이 전제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취약계층에 대한 인권 유린은 더 심각했다. 구금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검신(알몸검사)이 시행됐고, 여성 수용자엔 손을 사용한 체강검사(자궁검사)까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죽이기도 했다. 한 탈북민은 “2014년 평양산원에서 장애가 있는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기를 엎어놓고 있으면 숨을 쉬지 못해 죽는다고 했는데, 북한 당국의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선진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보고서를 발간하고 공개하는 건 북한 당국에 의한 주민들의 인권 유린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이날 설명회엔 북한인권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유지태 씨가 참석했다. 유 씨는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영상보고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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