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추락…달러 대비 아시아 통화 가치도 1년7개월 만에 최저

"엔화 약세, 미 연준의 세계 금융시장 지배력 보여줘"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엔화 가치가 추락하고 아시아 통화 가치도 1년 7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89.98로, 2022년 11월 3일(89.09)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원화, 중국 위안화, 싱가포르 달러화, 인도 루피화, 대만 달러화, 태국 밧화 등 9개 아시아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준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준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106.02를 나타내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전날엔 지난달 초 이후 처음으로 106선을 넘었다.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의 통화 가치도 급락 추세다.

불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멕시코 페소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9.0% 떨어지면서 신흥시장에서 가장 약한 흐름을 보였고, 콜롬비아(-6.3%), 브라질(-6.3%), 칠레(-5.3%)가 바로 뒤를 이었다. 헝가리(-4.8%), 폴란드(-3.0%), 체코(-2.4%) 등 동유럽 국가들의 통화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

EU 의회 선거에서 극우가 부상하며 유럽 지역 정치적 불안이 커진 데 따른 현상이다.

ING 은행 전략가들은 이날 투자자에게 보낸 메모에서 "중부와 동부 유럽, 신흥시장 전체의 상황이 전날 다시 악화했다"고 말했다. 특히 엔화 가치는 전날 달러 대비 환율이 160엔을 다시 돌파하며 37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유로화 대비로는 역대 최저로 주저앉았다.

이날도 엔/달러 환율은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과 미국간 금리 격차로 인해 엔화가 계속 압박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들어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12% 넘게 하락했다.

금융시장에선 엔/달러 환율이 165엔을 넘어 170엔까지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당장 관심사는 일본 정부의 개입 여부다.

간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은 전날 엔화 약세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적절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웰스파고 은행의 거시 전략가 에릭 넬슨은 "엔/달러 환율이 165엔까지 오르면 일본 당국이 개입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씨티그룹은 일본 당국의 '실탄 규모'가 약 2천억∼3천억 달러(278조∼417조원)에 달하며, 이만큼 엔화를 사려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국채를 대거 처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당국은 4월 26일부터 5월 29일까지 약 한 달간 9조7천885억엔(약 84조8천억원) 규모의 시장 개입을 했다.

일각에선 28일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나오기 전에는 당국이 엔화 방어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PCE 물가지수는 연준이 통화 정책 경로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물가 지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범주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 상승세가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달러화 강세와 엔화 약세는 미 연준의 세계 금융시장 지배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냇얼라이언스 증권의 국제 채권 대표 앤드루 브레너는 "모든 것이 연준과 관련돼있다"며 "미국이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서 세계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BNY 멜론 캐피털 마켓츠의 시장 전략 대표 밥 새비지는 "결국 연준이 실제 통화완화 정책을 펼치기 전에는 엔화 가치를 유지하려는 일본 당국의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