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기업가치 '세계 톱'…엔비디아의 저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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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 시가총액 3조3350억 달러(약 4620조원)를 기록하며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에 올랐습니다. 시가총액이란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가에 총주식 수를 곱한 것으로, 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업의 가치를 나타냅니다. 엔비디아가 창업 31년 만에 세계 최고 기업에 등극한 거죠.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이후 연속 하락하며 시총 1위의 영예는 ‘1일 천하’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폭발적 성장세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엔비디아는 작년 6월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하더니 지난 3월 2조 달러, 그리고 지난달 5일엔 3조 달러를 뚫었습니다. 2022년 100달러대이던 주가가 지난달 7일 액면분할 직전 1208달러까지 뛰어 ‘천비디아’라 불리기도 했죠.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은 AI의 데이터 학습과 추론에 사용되는 AI 반도체 ‘AI 가속기’입니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세계시장의 97%를 점하고 있어 이 제품을 구하지 못하면 AI 서비스는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래픽카드를 만들던 컴퓨터 주변기기 회사가 어떻게 세계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섰는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전 산업 분야에서 AI 활용이 불붙고 있어 엔비디아도 자율주행차, 로봇, 제약, 풍력발전소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일상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엔비디아의 성장사와 기술적 배경, 성공 비결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그래픽카드 만들다 AI반도체 황제로
'기술 민주화'로 AI 플랫폼 입지 다져

로이터연합뉴스
엔비디아는 1993년 창립 당시만 해도 컴퓨터그래픽 카드를 만들던 회사에 불과했습니다. 1995년 출시한 첫 그래픽카드 ‘NV1’도 호환성에 문제가 있어 실패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자양분이 돼 1997년 두 번째 작품인 ‘RIVA 128’은 발매 4개월 만에 약 100만 개가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둡니다. 1999년에 출시한 ‘GeForce 256’부터는 그래픽카드를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에 빗대 그래픽처리장치(GPU)라고 부르고 위상을 높였습니다.세계 반도체 산업은 박리다매에 초점을 맞춘 범용 칩에서 주문형 고부가가치 칩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인텔이 x86을 앞세워 CPU 칩을 먼저 장악했고, 다음으로 스마트폰이 확산하자 단순명령체계(RISC) 기반의 ARM이 패권을 잡았죠. 세 번째 주자가 GPU를 인공지능(AI) 반도체로 확장시킨 엔비디아입니다. PC 시대 인텔의 급성장이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도는 2년마다 배로 증가)으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황(젠슨 황 CEO)의 법칙’(AI칩 성능은 2년마다 배 이상 향상)이 지배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시가총액 세계 1위를 ‘터치’한 힘의 근원이지요.

‘AI 심장’ 된 GPU

그러면 GPU는 어떻게 AI 시대의 총아가 됐을까요? 먼저 CPU는 명령어를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하는 직렬연산 방식인 데 반해, GPU는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연산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게임을 위해선 화면 속 수백만 개 픽셀의 연산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렇듯 게임과 이미지 디스플레이에 맞게 개발된 GPU를 고성능 컴퓨팅용 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컴퓨터 과학자들이 2000년대 들어 발견합니다.2012년에 이르러서는 이미지 분류 AI인 알렉스넷의 학습(deep-learning)을 엔비디아 GPU로 시킵니다. 일반 칩의 경우 수개월 걸리는 작업이 GPU 칩으론 며칠밖에 안 걸렸죠. 이를 두고 ‘가속 컴퓨팅(accelerated computing)’이라 부릅니다. 가속 컴퓨팅 기술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스트리밍권을 구매할 때 신용카드의 보안성을 유지하는 일, 배달앱의 메뉴 추천 기능 등도 이 기술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2017년엔 코인 열풍이 불면서 빠른 연산이 가능한 GPU가 암호화폐 채굴에 활용되기도 했어요. 결정적으로는 2022년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하고 대형언어모델(LLM) 개발로 이어지면서 엔비디아 GPU에 엄청난 수요가 몰리게 됩니다. AI가 LLM 학습을 하려면 GPU가 최대 몇만 개씩 필요한데, 생성형 AI용 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95% 점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료 공개한 AI 기술 생태계

또 하나 주목할 점은 GPU가 가속 컴퓨팅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쿠다(CUDA, 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의 존재입니다. 이는 GPU가 가진 병렬성을 AI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플랫폼으로, 엔비디아가 2006년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엔비디아는 GPU와 호환되도록 하는 조건만 걸고 있어요. 현장에선 이제 쿠다 없이 AI 개발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엔비디아는 십수 년 전부터 AI 시장 개화에 대비해 혁신을 거듭하고 결과물을 업계 표준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젠슨 황은 이를 ‘기술 민주화’라 표현합니다. 거대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개인의 인터넷 이용부터 디지털 생물학, 로봇공학 등에 이르기까지 엔비디아의 기술을 마음껏 쓰라는 거죠. 그러니 AI 기술이 확장될수록 엔비디아의 산업 지배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엔비디아는 실제로 바이오기업, 자율주행차에도 투자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 엔비디아는 AI 기반 바이오 기업인 리커전의 AI 모델 개발을 위해 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장 사업에도 공을 들입니다. 폭스콘과 협업해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 계획을 발표했죠. 엔비디아가 단순 칩 공급자를 넘어 GPU 컴퓨팅과 AI 플랫폼 사업자로 변모하고 있는 겁니다.

NIE 포인트

1. 반도체 산업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자.

2. 가속 컴퓨팅, AI 가속기 등에 쓰인 ‘가속’의 의미에 대해 공부해보자.

3.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찾아보자.

엔비디아 성공 이끈 '한 우물 파기'
소통하는 CEO, 실패 경영학도 눈길

AP연합뉴스
세계 최고 기업과 그 기업을 일군 창업자의 면모를 살펴보는 것은 개인의 삶에도 많은 영감을 줍니다. 어떻게 살아야 세상이 보상을 해주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엔비디아의 급성장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한 우물 정신’을 들 수 있습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1993년 30세에 창업할 당시, 컴퓨터그래픽 분야에서 ‘일을 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3차원(D) 게임 시장에 집중하고 그래픽카드의 혁신을 고민하던 그는 CPU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3D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GeForce 256’이란 그래픽카드를 개발합니다. 그는 이 제품을 그래픽처리장치(GPU)라고 불렀는데요, 마치 반도체 세상이 GPU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 직감한 듯합니다. “알렉스넷의 경험에서 병렬연산 방식의 GPU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깨달았다”는 그의 인식도 한 우물 파기의 보답이라 할 수 있어요.

마법 같은 젠슨 황의 리더십

젠슨 황의 성공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갑자기 물어다 준 ‘박씨’ 같지만, 준비된 혁신가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대만에서 태어난 황 CEO는 열 살 때인 197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이후 오리건주립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반도체 기업인 LSI로지스틱스, AMD 등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를 맡았습니다. 그는 회사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개인 사무실을 갖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2022년 완공한 연면적 7만 ㎡ 규모의 엔비디아 신사옥 ‘보이저’에도 그를 위한 전용 공간은 없습니다. 황 CEO는 예전부터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은 모바일 시대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앉은 자리가 곧 사무실”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회사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면 직원과 소통하기도 쉽습니다. 그는 “CEO에게 직원은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이자 배움의 원천”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그는 ‘소통하는 CEO’의 전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자세입니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첫 그래픽카드인 ‘NV1’의 실패를 떠올리며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도전하면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뻔한 얘기 같지만, 그가 말하는 실패는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과 연결돼야 한다는 점에서 남다릅니다. 그는 지적 정직함이 있어야 실수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마냥 직원들을 감싸지는 않는데요, 회의 중 계속 실수를 남발하는 프로젝트팀을 호되게 질타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벨벳 속 철권’이란 별명도 얻었죠. ‘제2의 잡스’라고 불리는 이유도 그래서고요.

‘임무가 보스다’ 기업문화 한몫

엔비디아 특유의 기업문화도 성공의 밑거름입니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 직원들은 “우리 회사는 폐업까지 30일 남았다”는 정신으로 일한다고 합니다. 첫 그래픽카드의 실패, 두 번째 ‘리바128’을 출시했을 때의 자금난에서 경험한 절박함이 이런 자세를 만들었어요. 이는 변화와 혁신에 두려움을 갖기보다 목말라하게 하는 조직 문화를 뿌리내리게 했죠. 다음으로 철저한 성과주의가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회사 내 표어가 바로 ‘임무가 보스다(Mission is Boss, MIB)’입니다. 이는 현재 주어진 일이 자신의 상관이라는 얘기인데요, 직책·직급의 눈치를 보지 말고 프로젝트와 성과 중심으로 일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성과도 실패도 함께 나눈다(No One Loses Alone, NOLA)’는 문화도 유명합니다. 이는 위의 실패경영학과도 연관됩니다. ‘엔비디아는 홀로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함께 도전하고 함께 결과에 책임진다’는 겁니다. 조직의 관용 정신을 믿고 철저히 일에만 집중하란 얘기죠.

엔비디아가 시총 세계 1위 기업에 올랐다가 주가가 연일 하락하면서 ‘주가 거품론’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다른 빅테크들이 AI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고 나섰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러나 엔비디아의 오늘을 만든 이런 조직 문화와 CEO의 리더십은 상당 기간 엔비디아의 성공 시대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NIE 포인트

1. 스티브 잡스와 젠슨 황의 리더십을 비교해보자.

2. 리더에게는 어떤 품성이 중요한지 생각해보자.3. 엔비디아 기업문화의 장점을 한국 기업도 따라 할 수 있을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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