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TV토론] 어눌했던 바이든 vs 노련해진 트럼프…4년전과 달랐다(종합)

'감기설' 바이든, 활력없고 말더듬어…고령·인지력 논란 재점화?
4년전 '끼어들기'로 실점했던 트럼프, 냉정한 토론…발언시간도 더 많아
"호구, 패배자"·"최악 대통령"·"범죄자"·"길고양이 도덕"…악수도 안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대결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7일(현지시간) 첫 TV 토론은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난타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애틀랜타의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이날 토론에서 두 후보는 시작 때와 종료 후 악수도 하지 않았고, 중간에 광고를 위한 휴식 때도 상호 접촉도 없었다고 현장의 기자들은 전했다.

2020년 대선 때에 이어 다시 한번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선거전 과정에서 상대에게 쌓인 '악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며, 또한 민주·공화 양당간 최소한의 접점도 찾기 어려운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바이든, 트럼프 성추문 적나라하게 거론…'유죄평결' 트럼프, 바이든 향해 "범죄자"
이날 토론에서 두 후보가 바로 옆에 선 상대에게 쓴 호칭은 전·현직 최고 지도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패배자'(loser), '호구'(sucker·이상 바이든이 트럼프에 대해), '이 자'(this man·트럼프가 바이든에 대해), '최악의 대통령'(두 사람 다 상대에 대해) 등의 표현으로 상대방을 불렀다.

90분간의 토론의 내용 면에서도 상대를 비판하고 헐뜯는 네거티브 발언들이 정책이나 비전 제시를 압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을 추행한 데 대해 벌금으로 몇십억 달러를 내야 하는 거냐", "부인이 임신했을 때 포르노 스타와 성관계를 가졌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여과없이 거론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길고양이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깎아 내렸다.

이에 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포르노 스타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반박한 뒤 "그(바이든)가 문장의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라며 81세인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 논란을 건드렸다. 또한 두 후보는 상대를 '범죄자'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추문 입막음돈 지급 관련 회사 서류 조작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유죄를 받은 중죄인"이라고 칭했다.

그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바이든)는 그가 한 모든 일 때문에 '유죄 받은 중범죄자'가 될 수 있다"며 "그는 끔직한 일들을 했다.

이 자는 범죄자"라고 맞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바이든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21년 이뤄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에 대해 "역사상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라면서 "우리는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4년전의 노련미 사라진 바이든, 웅얼거리고 말 더듬어…트럼프는 '끼어들기' 자제한 채 더 진지해진 모습
현직 대통령이었던 트럼프에게 '야당 후보' 바이든이 도전했던 2020년 대선 때와 정반대 입장에서 토론한 두 사람은 4년 전과 자못 다른 태도로 임했다.

4년 전 바이든 대통령은 '도전자' 입장이었음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훨씬 긴 정치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시종 여유 있는 모습이었으나 이날은 경직된 듯했다.

그는 거친 쉰목소리로 자주 말을 더듬었고, 불법 이민 대응과 관련한 사회자 질문에 답하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발언 기회를 넘기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감기에 걸린 채 토론에 임했다는 보도들이 나오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지난 3월 국정연설 때와 같은 활력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가끔 기침도 했다.

토론 후반에 가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이기도 했지만 4년 전 토론 때와 같은 여유와 명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81세 고령에 따른 인지력 논란을 불식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성'의 입장이었던 4년 전에 토론 때에 비해 다소 진지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4년 전 토론 때 바이든 대통령 발언에 끼어들며 말끊기를 남용해 실점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과거에 비해 차분하고 조리있게 자기 주장을 펴는 한편 힘찬 목소리로 토론 분위기를 압도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나오긴 했지만, 전체 발언 시간에서도 바이든 대통령보다 5분 이상 더 많이 차지하는 등 토론을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난맥상을 꼬집는 바이든 대통령의 노련한 공세에 다소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2020년 토론 때와는 달랐다.

바이든 대통령이 '포르노 스타와의 성관계'를 거론했을 때도 흥분하거나 냉정을 잃는 모습이 아니었다.

토론 종료 후 바이든 대통령은 무대 위로 올라온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대화를 나눈 뒤 진행을 맡은 CNN 앵커 제이크 태퍼와 데이나 배시에게 인사를 했다.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토론장에 동행하지 않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곧바로 무대 뒤로 퇴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