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란대선] 찌그러진 채 달리는 택시, 무섭게 오르는 환율

제재로 부품 공급 어려워 차 수리 엄두 안나…"물가가 날마다 오른다" 27일(현지시간) 낮 이란 수도 테헤란의 북쪽 끝 타즈리시 지역의 정류장엔 택시 수십 대가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만에 나타난 손님에 한 택시 운전사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며 말을 붙여왔다. 그의 노란색 택시는 이란 국내 자동차회사 이란호드로에서 나온 소형 세단 사만드였다.

택시 운전사 이라지(57) 씨는 이 차를 8년째 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접촉사고를 여러 번 겪은 듯 운전석 문짝이 움푹 패고 뒤 범퍼가 너덜너덜했다
몸통이 찌그러진 택시를 타기가 꺼려져 다른 택시를 둘러보니 다들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른 차에 비해 그의 택시는 상태가 온전한 편이었다.

바로 옆에 주차된 푸조405 택시는 전면부, 조수석 뒷좌석, 트렁크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부분에 찌그러지고 긁힌 사고의 흔적이 보였다.
이라지 씨는 하루 12시간씩 택시를 몰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루에 손님 40명 정도를 태운다는 그는 "여러 비용을 걸 빼고 손에 남는 돈은 100만토만(약 3만2천원) 정도"라고 푸념했다.

이란은 '우버'와 같은 차량호출 앱을 이용한 일반 승용차의 영업이 허용돼 이라지 씨와 같은 등록된 택시 영업은 더욱 힘겨워졌다.

산유국 이란에서 휘발유 가격은 저렴한 편이고 택시엔 연료 보조금도 나와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고나 고장이 났을 때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고 한다. 부품이 부족해 제때 고칠 수 없고 그나마도 부품값이 계속 비싸져 아예 수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택시가 찌그러진 채 도로를 달리는 이유다.
30년 경력의 택시 운전사 이라지 씨에게 사만드는 4번째 차다.

그는 "차를 최대한 아껴 오래 탈 계획"이라고 했다.

테헤란에 처음 온 한국인이라면 낡은 차의 거대한 행렬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부유층의 '번듯한' 차가 간간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대다수는 이라지 씨의 택시처럼 오래되고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마치 제재로 시름 하는 이란 시민들의 고된 일상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런 낡은 차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테헤란의 대기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과거 테헤란 도로는 한국의 소형차 '프라이드'의 라이선스를 수입해 현지 자동차 회사 사이파에서 생산한 '이란판 프라이드'가 국민차로 불렸지만 지금은 중국산이 부쩍 많아졌다.

서방의 제재로 수입길이 막히자 그 자리를 중국 회사가 채웠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한 대형 시장을 찾았다.

이란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공영 시장'을 운영하는데 가격이 조금 싼 대신 물건이 다양하거나 충분치는 않다.

두 아들을 데리고 장을 보러 온 케니즈(52) 씨는 "한 주가 다르게 물가가 뛴다"고 말했다.

고향인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에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가게보다 암시장이 더 활성화돼있다고 했다.

이란의 리알화는 미국의 제재 강도가 커질수록 가치가 급락했다.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성사됐던 2016년 1달러에 약 3만4천 리알이던 환율은 미국이 핵합의를 파기한 2018년 17만 리알로 뛰더니 현재 61만 리알로 8년 만에 20배 가까이 올랐다.

환율 급등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이란의 서민층은 그만큼 가난해진 셈이다.

이란의 공식 화폐단위는 리알이지만 일상에선 '토만'이라는 옛 화폐단위가 더 많이 쓰인다.

토만은 리알에서 '0'을 하나 뗀 단위인데 환율 급등과 물가 상승으로 액수가 커지자 10분의 1로 숫자를 줄여 간단히 부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특히 외국인은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리알?, 토만?"이라고 물어 돈의 단위를 확인해야 한다.

이 대형 시장에서 비자·마스터 카드는 무용지물이었다.

비단 이 시장뿐 아니라 이란 전역에서 신용카드는 쓸 수 없다.

미국의 금융 제재로 국제 금융망에서 이란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인근 전통시장 전기제품 매장에는 한국산 청소기 여러 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교체형 필터를 사용하는 구형 유선 모델이다.

언제부터 진열됐었는지 제품 상자는 누렇게 빛이 바랬다.

이곳에서 짐수레를 끌고 다니며 일거리를 찾는 소년 4명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모하마드 레자(18)는 옆의 꼬마를 가리키며 "내 동생은 모스타파는 11살"이라고 말했다.

이란 남부에서 돈을 벌기 위해 테헤란으로 상경했다고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두 형제는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시장에서 수레를 끄는 일을 하는데 하루 벌이가 600만 리알, 한국 돈 1만4천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렇게 돈을 벌어 생활비를 빼고 전부 고향의 가족 8명에게 부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