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6시 이천 모인 SK사장 30명…'ABC 전략' 끝장토론
입력
수정
지면A10
1박2일 SK 경영전략회의28일 오전 6시 경기 이천에 있는 SK매니지먼트시스템(SKMS)연구소. 평소 이 시간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장소지만 이날은 고급 골프장 입구를 연상케 했다. 오전 6시부터 제네시스 G90 등 최고급 세단이 줄 이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뒷좌석에 탄 이들은 장용호 SK㈜ 사장,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유정준 SK온 부회장, 추형욱 SK E&S 사장 등 SK그룹 최고경영자(CEO)들. SK의 미래를 결정할 1박 2일 일정의 ‘SK 경영전략회의’는 이렇게 시작했다.
최창원 의장, 전날 도착해 '열공'
AI·바이오·반도체 사업 전환 논의
성과 더딘 친환경은 효율화 방점
'전략통' 최영찬, SK온서 E&S로
○배터리·바이오 구조조정 논의
연구소는 전날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회의를 주재하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은 전날 밤 11시께 SKMS연구소에 와서 회의 안건을 미리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회의 시작은 오전 8시였지만 계열사 CEO 30명과 임원들은 오전 6~7시에 SKMS연구소에 도착했다. 차량 안내 도우미와 보안 직원들은 보안을 위해 꼼꼼히 참석자를 확인한 뒤 들여보냈다. 이날 회의에는 주요 계열사 CEO와 임직원은 물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도 참석했다. 바이오 산업 혁신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내기 위해서다.
회의는 각 현안과 직접 연관이 있는 CEO들이 따로 모여 집중 토론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다만 모든 소그룹 토론의 공통 주제는 SK의 무게중심을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에서 ‘ABC’(인공지능·배터리·반도체)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바이오가 있던 자리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는 것이다.당장 돈이 안 되는 바이오와 수소, 친환경 사업은 무리한 확장보다는 중복 자산 매각, 운영 효율화에 방점을 두고 논의했다. AI와 반도체 분야는 반대로 투자 확대 방안을 협의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사상 최대 금액으로 투자하기 위해 강도 높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분야에선 SK온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윤활유 생산회사인 SK엔무브와의 합병,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등을 논의했다. 배터리용 분리막을 생산하는 SKIET의 지분은 이미 시장에 나왔다.
○“AI 투자 안 하면 못 살아남는다”
AI 투자 확대 방안도 주요 의제에 올랐다. 최 의장은 이번 회의 직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잇따라 만나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CEO들은 기존 사업과 AI의 접목 방안 등을 가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느슨해진 조직 문화를 바꾸는 내용도 테이블에 올랐다. CEO들은 자율 좌석제와 유연 근무제, 주 4일제 조정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문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날 SKMS연구소에 들어선 모든 차량이 G90, 카니발 등 국산차로 바뀐 게 대표적이다.SK그룹은 구조조정을 위한 인사·조직 개편에도 시동을 걸었다. SK그룹의 대표적인 재무·전략통으로 꼽히는 최영찬 SK온 경영지원총괄사장이 다음달 1일 SK E&S 미래성장총괄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최 사장은 2022년부터 SK온에서 해외 조인트벤처(JV) 설립과 글로벌 자금 유치 등을 총괄했다. 이번 인사에 따라 그린·에너지 사업의 내실 경영을 통한 질적 성장 전략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온 살리기’ 전략의 일환으로 SK온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추가 인사나 조직 개편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천=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