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란대선] 마냥 못 웃는 '1위'…"결선 상대, 우리에 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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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개혁 후보? 그래도 투표 안 해"…정치·선거에 무관심 팽배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개표 결과가 전해진 29일(현지시간).유일한 개혁 후보 마수드 페제시키안(70) 마즐리스(의회) 의원이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득표율 1위를 기록하며 결선에 진출했지만 페제시키안 측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19년 만의 대선 결선투표가 성사된 이날 오후 테헤란 시내는 차분했다.
거리 곳곳에 나부끼던 후보 현수막도 모두 철거됐고, 결선에 오른 후보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거나 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 등 며칠 전보다도 선거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한 가로수 옆에는 한때 보수 유력 후보로 꼽혔으나 전날 투표에서 3위에 그치며 탈락한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63) 의회 의장의 홍보 전단지 뭉텅이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1차 투표의 마지막 공식 선거운동이 있었던 지난 26일 방문했던 페제시키안 캠프 사무실을 사흘 만에 다시 찾았다.건물은 외벽을 장식했던 공보물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휑해 보였다.결선용 새 현수막으로 갈아입고자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캠프의 공보 담당자인 알리 라시는 바깥 분위기가 조용한 것과 관련해 "내무부부가 아직 결선 선거운동이 가능한 일시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층 로비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선거운동원과 자원봉사자 30여명은 오전에 만끽한 1차 투표 승리의 기쁨과 일주일 뒤로 다가온 결선의 긴장감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동양인 기자의 외모가 신기한 듯 팔짱을 끼고 바라보던 모하마드 간디(63)는 "아침에 일터에서 개표 결과를 접했는데 기분이 매우 좋았다"라면서도 "솔직히 말해 2라운드 상대는 하메네이가 미는 강력한 후보여서 우리에게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충성파'로 알려진 사이드 잘릴리(59) 전 외무차관이 결선 상대가 된 것에 대한 경계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차도르를 둘러쓰고 앉아 있던 파트메 자흐라(63)도 "1차에서 승부를 낼 수 있었는데 100만표가 부족해서 결선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딸 아마네 사파에이안(32)과 함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는 그는 "페제시키안은 부인을 잃고도 재혼하지 않고 아이를 혼자 키운 신실한 사람"이라며 부인을 2명 둔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과 비교되지 않냐고 말했다.
로비를 돌며 인터뷰를 계속하던 도중 갑자기 한 중년 남성이 고성으로 무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재킷을 벗어 왼쪽 팔에 걸친 그는 "여기서 차나 홀짝대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다"라며 "텔레그램 메신저로 10명씩은 연락해서 투표장에 불러올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잘릴리 쪽도 필사적이고, 그쪽이 당선되면 이란은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몇 마디 더 내뱉더니 자리를 떴다.
그를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이 남성의 말처럼 페제시키안 캠프가 처한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은 듯했다.
인근 대학가 카페에서 청년 약 20여명에게 차례로 말을 붙여봤다.
며칠 전 한 무리의 대학생들로부터 '결선투표가 열리면 꼭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곳이라 그와 비슷한 적극적인 청년들을 인터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제 투표를 하고 왔다는 사람도, 다음 주는 꼭 투표장에 가겠다는 사람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히잡을 벗고 남자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한 여성은 대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다음 주에 결선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남자친구는 "나는 TV 토론도, 뉴스도 안 본다"며 손사래를 쳤다.
옆 테이블에 앉은 숏커트 차림의 두 여성 대학생은 '청년 사이에서 히잡 단속 완화를 약속한 페제시키안 인기가 좋지 않냐'라는 물음에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고 대꾸하고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한 무역회사에서 한국 레이저 장비를 수입하는 일을 한다는 샤루즈(35)가 나름 진솔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샤루즈는 "정치도, 투표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선거가 4년마다 있지만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 페제시키안도 잘릴리도 다를 것이 없다"라고 냉소했다.그러면서 "우리 세대에 정치 참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며 "시간이 20년 정도 흘러야 무언가 바뀌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연합뉴스
19년 만의 대선 결선투표가 성사된 이날 오후 테헤란 시내는 차분했다.
거리 곳곳에 나부끼던 후보 현수막도 모두 철거됐고, 결선에 오른 후보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거나 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 등 며칠 전보다도 선거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한 가로수 옆에는 한때 보수 유력 후보로 꼽혔으나 전날 투표에서 3위에 그치며 탈락한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63) 의회 의장의 홍보 전단지 뭉텅이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1차 투표의 마지막 공식 선거운동이 있었던 지난 26일 방문했던 페제시키안 캠프 사무실을 사흘 만에 다시 찾았다.건물은 외벽을 장식했던 공보물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휑해 보였다.결선용 새 현수막으로 갈아입고자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캠프의 공보 담당자인 알리 라시는 바깥 분위기가 조용한 것과 관련해 "내무부부가 아직 결선 선거운동이 가능한 일시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층 로비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선거운동원과 자원봉사자 30여명은 오전에 만끽한 1차 투표 승리의 기쁨과 일주일 뒤로 다가온 결선의 긴장감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동양인 기자의 외모가 신기한 듯 팔짱을 끼고 바라보던 모하마드 간디(63)는 "아침에 일터에서 개표 결과를 접했는데 기분이 매우 좋았다"라면서도 "솔직히 말해 2라운드 상대는 하메네이가 미는 강력한 후보여서 우리에게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충성파'로 알려진 사이드 잘릴리(59) 전 외무차관이 결선 상대가 된 것에 대한 경계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차도르를 둘러쓰고 앉아 있던 파트메 자흐라(63)도 "1차에서 승부를 낼 수 있었는데 100만표가 부족해서 결선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딸 아마네 사파에이안(32)과 함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는 그는 "페제시키안은 부인을 잃고도 재혼하지 않고 아이를 혼자 키운 신실한 사람"이라며 부인을 2명 둔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과 비교되지 않냐고 말했다.
로비를 돌며 인터뷰를 계속하던 도중 갑자기 한 중년 남성이 고성으로 무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재킷을 벗어 왼쪽 팔에 걸친 그는 "여기서 차나 홀짝대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다"라며 "텔레그램 메신저로 10명씩은 연락해서 투표장에 불러올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잘릴리 쪽도 필사적이고, 그쪽이 당선되면 이란은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몇 마디 더 내뱉더니 자리를 떴다.
그를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이 남성의 말처럼 페제시키안 캠프가 처한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은 듯했다.
인근 대학가 카페에서 청년 약 20여명에게 차례로 말을 붙여봤다.
며칠 전 한 무리의 대학생들로부터 '결선투표가 열리면 꼭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곳이라 그와 비슷한 적극적인 청년들을 인터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제 투표를 하고 왔다는 사람도, 다음 주는 꼭 투표장에 가겠다는 사람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히잡을 벗고 남자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한 여성은 대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다음 주에 결선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남자친구는 "나는 TV 토론도, 뉴스도 안 본다"며 손사래를 쳤다.
옆 테이블에 앉은 숏커트 차림의 두 여성 대학생은 '청년 사이에서 히잡 단속 완화를 약속한 페제시키안 인기가 좋지 않냐'라는 물음에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고 대꾸하고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한 무역회사에서 한국 레이저 장비를 수입하는 일을 한다는 샤루즈(35)가 나름 진솔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샤루즈는 "정치도, 투표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선거가 4년마다 있지만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 페제시키안도 잘릴리도 다를 것이 없다"라고 냉소했다.그러면서 "우리 세대에 정치 참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며 "시간이 20년 정도 흘러야 무언가 바뀌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