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이 추천하는 맛집 가볼까"…상권까지 바꿔놨다

[알고리즘 지배사회 (6)]
GPS 도입으로 시작된 모빌리티 알고리즘
내비게이션 거쳐 AI 자율주행 시대 열어

완벽하지 않은 자율주행 보완할 '원격운전'도 시동
내년 한국서 쏘카 선보일 예정
자동차 내비게이션 관련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 최근 새로 차량을 구입한 김모씨가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다. 실제 도로에 가야 할 방향을 겹쳐 보여주는 방식으로 ‘길치’인 그의 스트레스를 상당히 덜어준다. “내비게이션에서 주변 관광지나 맛집을 소개하면 한번 가 볼까 싶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2. 지난 여름 미국 여행을 갔던 이모씨는 내비게이션을 믿었다가 큰 낭패를 겪었다. 구글맵이 가르쳐 준 길로 접어들었는데 원래는 들어가서는 안 되는 사유지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뒤늦게 잘못 들어온 줄 알고 출구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진흙탕에 빠져 차가 서 버렸다. 견인차를 불러서야 빠져나오게 된 그는 “구글맵에 보상을 청구해야 할 판”이라고 투덜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찰이 교통법규를 어긴 자율주행 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 사진=김영록의 테크인사이트
GPS(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를 이용한 내비게이션에서 시작된 모빌리티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일상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이용자를 더 빠르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수준을 넘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까지 결정해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점유율 1위 내비게이션 사업자는 티맵모빌리티다. 지난해 10월 월간 활성 사용자 수 1471만명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티맵모빌리티는 카카오톡이 처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료로 내비를 공개해 사용자를 모으는 전략을 펴고 있다. 수익을 기대하는 분야는 데이터와 테크 사업이다. 티맵 사용자는 센서를 통해 ‘안전운전 점수’를 매기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보험 할인특약 등으로 연계하는 이 사업은 매년 80%씩 고속 성장하고 있다.

티맵모빌리티가 지향하는 건 ‘마스(MaaS·Mobility as a Service)’ 서비스 기업이다. 대리운전, 주차,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시스템(IVI), 전기차 충전, 렌터카 등의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총망라해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미 내비게이션은 이미 다양한 신사업을 만들었다. 택시·대리운전 호출 플랫폼과 배달앱 플랫폼, 공유 킥보드·자전거의 등장은 내비게이션에서 시작된 알고리즘에 힘입어 가능해졌다. 아마존의 드론 배송도 마찬가지다.

상권도 뒤바꿨다. 외식사업가 백종원과 가수 성시경이 소개한 ‘지역 맛집’에는 그 다음날이면 긴 줄이 생긴다. 주소만 안다면 어디든 단 번에 찾아 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푸트테크 스타트업 식신은 2017년 현대 기아차와 제휴를 맺고, 사용자 리뷰를 통해 엄선된 전국 7000여개 ‘별맛집’을 내비게이션을 통해 제공 중이다.

내비게이션을 중심으로 한 마스 서비스는 사용자 편의를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교묘하게 섞인 광고나 잘못된 정보 탓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씨처럼 내비게이션을 맹신했다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AI 결합해 자율주행 진화

삼일PwC 경영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모빌리티 보고서. / 자료=삼일PwC경영연구원
내비게이션으로 시작된 알고리즘은 판단기능과 조작기능이 결합되면서 자율주행 알고리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과 완성차 업체 거대 IT공룡에 이르기까지 인간 개입이 필요없는 레벨4의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데 한창이다. 구글 산하 웨이모는 2017년 애리조나 주 챈들러에 자율주행 실험을 시작했고, 피닉스 등에서 로보택시를 운행 중이다. 일본의 RoAD to L4, 중국 바이두 아폴로 프로젝트 등도 한창이다.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미국 합작사인 모셔널에 1조 2000억 원이 넘는 유상증자를 한 이유도 바로 지금이 자율주행 기술을 강화해야 할 시기라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지난해말 자율주행 버스 시범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오는 8월 강남 지역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선보이기로 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모빌리티 보고서. / 자료=삼일PwC경영연구원

기술·가격이 ‘병목’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상상도는 화려하다. 그러나 모빌리티 업계는 이러한 적극적인 전망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AI업계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일반인공지능(AGI)이 수년 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흔한 데 비해 모빌리티 업계에선 “‘진짜’ 자율주행은 2030년에도 어려울 수 있다”고 보는 식이다. 실제로 사람이나 물건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넘어서야 할 물리적·심리적 병목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유인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적 병목은 외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를 실시간으로 빠르게 처리해서 대응하는 능력 두 가지다. 애매한 상황에서도 인간처럼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데이터 처리를 가능케 하는 소프트웨어와 통신망 등이 두루 갖춰져야 한다. 물리적인 움직임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로보틱스 기술도 관건이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원격운전’을 대안으로 내세운 과도기적 서비스가 나오기도 한다. 독일 스타트업 베이(Vay) 테크놀로지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텔레드라이빙 차량공유 서비스를 내놨다. 차량 사용을 원하는 이용자가 요청하면 원격운전으로 가져다 주고 회수도 원격으로 하는 서비스다. 한국서도 내년에 쏘카를 통해 서비스할 예정이다.

가장 큰 병목은 ‘기술의 가격(경제성)’이다. 모빌리티 분야에서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통신·도로·에너지 등 관련 인프라가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기반시설 투자는 대규모 이용자를 전제로 한다. 모빌리티 분야의 기술 발전이 항상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이유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개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라이다 대신 저렴한 카메라와 레이더를 이용해 낮은 수준의 자율주행(오토파일럿)을 구현한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가격이 낮아야 ‘충분히 많은 수의 이용자’라는 변화의 전제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로보틱스 분야에서도 저렴한 기술은 중요한 이슈다.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비싸면 기존의 기술이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훈/이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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