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엔비디아 주가…2000년 '시스코 폭락' 데자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년간 치솟은 엔비디아
주식분할 이후 주가 주춤

젠슨 황, 최근 주총에서
소명·현장중시·주인의식
확실히 제시하지 못해
주식분할 이후 엔비디아 주가가 갑자기 흔들리는 ‘워블링 장세(wobbling market)’가 지속되고 있다. 테슬라 등 주식분할 이후 크게 흔들렸던 기업의 주가 향방을 보면 대부분 폭락 사태로 이어졌다. 같은 맥락에서 <버블붐>, <인구절벽>의 저자로 잘 알려진 해리 덴트는 엔비디아 주가가 98% 수준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2년 동안 엔비디아 ‘불꽃 장세’가 지속됐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각종 언론에 나온 어조 지수를 보면 엔비디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증시도 엔비디아 주가 움직임에 따라 좌우되는 점에 착안해 ‘킹비디아’ ‘갓비디아’라는 용어가 나왔다. 창업자인 젠슨 황을 무조건 따라 하는 ‘젠새니티(Jensen+insanity)’ 현상까지 유행하고 있다.반도체, 인공지능(AI)과 관련된 개별 기업 주가는 엔비디아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주가는 엔비디아 고대역폭메모리(HBM)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로이터 보도에 따라 폭락하다가 젠슨 황이 오보임을 확인해주자 곧바로 낙폭을 만회했다. SK하이닉스, 한미반도체 등의 주가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도 ‘작위 후회(action regret)’가 ‘부작위 후회(inaction regret)’를 압도하고 있다. 요즘 뜨는 감정 경제학으로 보면 전자는 엔비디아 주식 매입 후 주가가 하락해 후회하는 현상을, 후자는 주가가 오를 때 주식을 사지 않아 후회하는 현상을 말한다. 두 용어는 ‘결혼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결혼하겠다’는 대화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마치 30년 전 인터넷으로 촉발된 정보기술(IT) 전성시대의 선두 주자였던 시스코시스템즈가 되살아난 듯한 데자뷔 분위기다. 시스코 주가는 2000년 폭락하기 직전까지 2년 동안 600% 넘게 올랐다. 짧은 영화에 그치긴 했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까지 등극했다.미국 경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IT산업의 주도로 높은 성장 속에서도 물가가 떨어지는 신경제 신화가 연출됐다. 증시도 나스닥지수를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 행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스코는 시총 1위 등극 이후 ‘황금 티켓 증후군’에 빠져 1년 동안 90% 넘게 폭락했다. 황금 티켓 증후군이란 한마디로 승리의 도취감으로 닥쳐오는 변화를 읽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2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보고서(Korea Economy Survey 2022)에서 한국 경제가 이 증후군에 빠졌다고 지적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용어다. 이 증후군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정주영 정신, 즉 창업자 정신이 필요하다.
지난 2년 동안 엔비디아 주가도 700% 넘게 올랐다. MS를 제치고 시총 1위에 등극한 것도 시스코와 같다. 주가수익비율(PER), 매출총이익률 등으로 보면 시스코와 다른 점이 있지만 주식분할 이후 흔들리는 엔비디아 주가가 앞으로 시스코의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시스코에 이어 최근 엔비디아 주가가 흔들릴 때 재조명되고 있는 정주영 정신의 실체는 이렇다. 정주영 정신은 △소명 의식 △현장 중시 △주인 의식이라는 세 가지 특성으로 구성된다. 창업자가 이끄는 기업이나, 직원의 의사결정과 행동 방식에 준거의 틀로 창업자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기업일수록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할아버지 정주영의 “해봤어?”에 손자 정의선의 “해보죠”가 대표적인 창업자 정신 경영이다.‘주주 친화적인 경영’도 중요하다. 잠재 가치만 있으면 계열사로 떼내는 카카오식 경영과 뒷전에 물러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인사 등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식 경영은 과감하게 버린다. 코리아 밸류업 대책 이후 현대자동차, 기아 주가가 크게 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다.

‘미래 트렌드를 읽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는 실천력’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강조되는 디스토피아 기업 환경을 맞아 가성비가 높은 전기차를 대중화한다든가 차세대 먹거리로 지구 밖을 겨냥한 우주 자동차 산업(off the earth industry)을 육성하는 전략이 단적인 예다.

정주영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첫 기회였던 주주총회에서 젠슨 황은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이 정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2분기 매출이 예상치 대비 20억달러 이상 뛰어넘는 ‘젠슨 황의 법칙’이 확인되지 못하면 엔비디아 주가는 의외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엔비디아 투자자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의 미학’을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