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경험하지 않고도 배려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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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3
이승희 작가·브랜드 마케터임신 32주차에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이 아기를 가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하던데, 정말 신기하게도 임신을 하니 세상이 또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다. 임신부가 되니 많은 배려를 받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매일 용인에서 신사동 사무실로 왕복 2시간 출퇴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두 개밖에 없는 임산부 배려석을 꼭 확보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생각보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과 중년 여성, 심지어 남성까지 앉아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서서 가면 몸이 무거워서 두 발이 저리고 몸이 붓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꼭 임산부 배려석이 아니더라도 배가 나온 임신부를 보면 자신의 자리를 양보할 법도 하지만, 냉랭한 출근길에서는 모두가 눈을 감고 있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다반사다. 서서 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 일이다.그런데 나도 임신하기 전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은 출퇴근길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오히려 누군가 한 명이 앉아서 조금이라도 열차 내 공간을 마련해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왜 나는 꼭 내 입장이 돼 봐야만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번을 계기로 경험해야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임산부만이 아니다.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돼 보면 음식점에서 많은 부분이 고군분투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가게를 평가할 수 없다. 직장 경험이 있는 대표라면 회사를 세울 때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경험하지 않고도 의식적으로 사회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자기만의 세상 영역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에게 시선을 돌려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해야만 한다.
학교나 회사에서 타인의 경험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상황을 배우게 하면 어떨까? 앞으론 경험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섬세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중에 태어날 우리 아이도 그런 사회에서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