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증거부족" 불송치…대놓고 이의신청하라는 경찰

대한민국 사기 리포트
(11)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사기수사

경찰, 수사권조정 후 인력난에
제도 악용해 檢에 사건 떠넘겨
불송치 이의신청 2년새 57%↑

피해자 "변호사부터 선임할 판"
# 울산의 50대 강모씨는 최근 수천만원의 사기 피해를 보고 경찰에 고소했지만, 오히려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강씨는 “경찰이 고소장 접수 단계부터 증거를 더 찾아오라더니, 이제는 대놓고 불송치 결정을 할 테니 이의신청해 검찰청에 가서 얘기하라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이 사기 피해자들에게 ‘불송치 결정’을 내리겠다며 이의신청을 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복잡한 경제 사건의 경우 이의신청 제도를 악용해 사건을 검찰에 떠넘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피해자들은 수사 부실·지연 등을 우려해 고소 단계부터 거액의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3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경찰의 불송치 결정(무혐의 종결)에 대해 이의신청이 접수된 사기 사건은 2021년 2만5048건에서 지난해 3만9348건으로 2년 새 57% 늘었다. 이의신청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하는 절차다. 고소인이 이의신청하면 경찰은 즉시 관할 검찰청에 사건 기록과 증거물을 보내야 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사건은 늘고 인력은 부족해지자 일부 수사관이 이의신청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더욱이 검찰이 경찰에 재수사나 보완 수사를 요청한 사건이 1년 넘게 지연되는 일도 빈번하다. 원칙적으로 3개월 내 조사를 종결해야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덮어둔 사건은 자연스럽게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난해 미제로 종결된 사기 범죄는 7만114건으로, 경찰이 접수한 전체 사기 범죄(34만7597건)의 20.2%를 차지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늘다 보니 피해자들은 경찰 고소 단계부터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사건이 집중되면서 고소장을 반려하고 수사가 미진한 문제가 생기자 피해자들은 수사 부실을 우려해 경찰 출신 변호사를 이용하는 것이다.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기관의 책임 의식이 약화하면서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21년 1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시행 이후 검찰은 기소·공소 유지에 집중하고 경찰의 수사권은 강화됐지만, 인력 부족으로 경찰 수사부서는 급증한 고소·진정 사건에 과부하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사 인력 확충과 함께 사기 범죄에 대한 예방·보호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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