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고액권 지폐에 기업가 넣은 일본…우리는 온통 조선시대 인물

모레부터 일본이 새로운 지폐를 발행한다. 세계 최초의 3차원 홀로그램 등 첨단 위조방지 기술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5000엔권은 일본 최초의 여성 해외 유학생이자 교육자, 1000엔권은 처음으로 파상풍균 배양에 성공한 의학자다. 최고액권인 1만엔권의 인물은 기업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시부사와는 일본 최초의 은행을 설립하는 등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에 걸쳐 500여 개 기업 창업에 관여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기업 경영과 동시에 복지, 의료, 교육 등 600개가 넘는 사회사업을 이끌기도 했다. 최고경영자와 오너라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 당시 일본에 필요한 사업을 일으키는 데 힘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부사와가 세우거나 관여한 기업은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 도쿄증권거래소, 일본철도(현 JR동일본), 오지제지, 이화학연구소, 다이니혼맥주(현 아사히맥주, 삿포로맥주)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시부사와가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섰다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일본에선 현재의 경제 강국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다.

다국가 공동 화폐이기에 아예 인물을 쓰지 않는 유로화를 제외하고는 대개 지폐에 국부(國父)나 독립 영웅 등 그 나라의 상징적 인물이 등장한다. 미국 달러의 경우 가장 많이 사용하는 10달러 지폐는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최고액권인 100달러 지폐는 미국 독립의 일등공신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주인공이다. 그 나머지는 역대 대통령이다. 우리는 4명 모두 조선시대 사람으로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유학과 관련된 인물이다. 그들의 뛰어난 업적과는 별개로 국민에게 우리 사회의 지향성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념이나 부(富)의 축적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염려가 없는 위인만 골랐던 건 아닌가. 우리도 앞으로 새 지폐를 만들 때 기업인 등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줄 인물을 선정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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