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당·총리 예약' 佛 국우…52년 만에 변방에서 권력 중심으로

장 마리 르펜 1972년 국민전선 창당…반공·반이민·반EU 노선
딸 마린 르펜 당 대표 맡아 '탈악마화' 이미지 변신…대중정당 지지세 확장
이달 9일 유럽의회 선거서 압승, 중심세력 급부상…파죽지세로 조기총선서도 압승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30일(현지시간) 예상대로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 제1당을 예약하며 의회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됐다.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를 혼합한 프랑스 정치 시스템에서는 의회 다수당이 정부 운영권을 쥔 총리를 배출하는 게 관례라 RN으로서는 창당 약 52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의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이 1972년 처음 탄생한 지 52년 만의 일이다.

1960년대 말 대규모 학생·노동자 시위가 벌어지며 정치적 불안정과 급진 좌파 운동이 부상하자 극우 세력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로 흩어져 있던 극우 세력을 한 지붕 아래 모은 건 알제리전 참전 용사 출신의 정치인 장 마리 르펜, 현재 RN의 중심인 마린 르펜 의원의 부친이다.

장 마리 르펜은 1972년 10월 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을 창당한다.

FN은 반공주의, 민족주의,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정책을 내세웠으며 프랑스의 주권과 전통적 가치를 강조했다.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 성향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극단적인 정치 성향 탓에 초창기 FN은 프랑스 정치권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분류되며 주류 정당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사실상 '왕따' 취급받던 FN이 프랑스 유권자들 눈에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건 2002년 장 마리 르펜이 대선 2차 투표에 진출하면서다.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8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지만, FN이 18%나 득표하면서 프랑스 정치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FN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혀가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부터다.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이후의 경제 불황은 많은 프랑스인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

높은 실업률과 경제적 불안정은 FN의 반이민, 반세계화, 반EU 기조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2011년 마린 르펜이 부친의 뒤를 이어 당 대표에 오르며 당의 이미지 쇄신 시도도 본격화한다.

마린 르펜은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급진적 이미지를 완화하는 '탈(脫)악마화' 전략을 썼다.

2018년 당명을 FN에서 지금의 국민연합(RN)으로 바꿨고, 당 내부 정화를 위해 급진적이고 논란이 된 인물들을 배제하거나 반유대주의적·동성애 혐오 발언 등을 통제했다.

그 일환으로 당의 뿌리인 부친을 당에서 축출하는 극약처방까지 꺼냈다.

당 정책에도 변화를 꾀했다.

세금 감면, 복지 확대, 프랑스 경제 보호 등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세워 중산층과 노동 계층의 지지를 끌어 올렸다.

또 반이민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인종차별적 접근이 아닌 국가 안보, 국가 정체성 보호 차원으로 포장해 중도층에 접근했다.

RN의 이런 노선은 특히 2015년 파리 테러 등으로 사회 불안이 커지면서 더 지지받게 됐다.

RN의 'EU 회의론'도 과도한 EU 차원의 규제나 시장 개방에 불만을 품은 농민 표심을 얻는 데 효력을 발휘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RN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올라갔다.

마린 르펜은 201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7.9%를 얻었지만 2차 투표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5년 뒤인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겨룬 대선 1차 투표에서 21.3%, 2차 투표에서 33.9%를 얻었다.

2022년 마크롱 대통령과의 재대결에선 1차 투표에서 23.2%, 2차 투표에서 41.5%를 얻어 격차를 더 좁혔다.

총선 1차 투표에서의 당 지지율도 2017년 13.2%에서 2022년 18.7%로 5%포인트 이상 뛰어 역대 최대인 89석을 차지했다.

이런 상승세를 타고 지난 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31.5%를 득표해 압승을 거두며 프랑스 정치권의 중심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에 따른 조기 총선 과정에서도 내내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의회 1당 자리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이번 RN의 성공 배경엔 현재 당의 얼굴이 된 28세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서 파리 근교의 노동계급 사회에서 자랐고 대학 졸업장도 없는 그의 성장 배경에 적지 않은 유권자가 동질감을 느꼈다.

그의 호감형 외모와 활발한 SNS 활동은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틱톡 팔로워만 170만 명이 넘는다.

정치학자 실뱅 크레퐁은 최근 웨스트 프랑스와 인터뷰에서 이를 가리켜 "조르당 바르델라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르델라는 젊고 외모도 멋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프로필은 유권자들의 프로필과 유사한데, 이들 유권자의 주요 특징은 낮은 학력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