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술 고민이라면…삼국지 조조에게 배워라 [조평규의 중국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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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콜린스 "초우량 기업 키우려면 능력 있는 인재 확보해야"

조조, 신분 관계 없이 능력 위주로 인재 선발
경쟁자 유비·손권보다 쉽게 인재 확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적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위대한 기업에서는 먼저 적합한 인재들을 모으고 그 후에 전략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초우량 기업을 키워 내고 싶다면 능력과 패기 넘치는 인재 확보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삼국지의 조조는 이 기준에 꼭 들어맞는 인물입니다. 당대의 인재들은 유비나 손권이 아니라 조조에게 더 많이 몰렸습니다. 조조의 인재관은 18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업 경영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조조는 생전에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지만, 그의 권신인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은 중원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중국 삼국시대 진수가 편찬한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내용이 아주 다릅니다. 소설가는 읽는 독자의 재미를 의식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조의 실상에 대해서 잘 모르고 부정적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유비가 중심인물이지만,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는 중국 역사의 정통성을 조조에게 두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재미도 있고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은 '삼국지'하면 대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떠올립니다. 소설 독자들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보며 의리를 배우고, 제갈량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통해 리더의 외로운 결정에 공감합니다. 유비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조조의 적벽대전(赤壁大戰) 패배에 통쾌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소설이 아닌 역사서의 중심이 어째서 조조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현대는 유비가 가진 장점인 덕(德)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21세기는 조조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용인술을 배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역사서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를 법치(法治)와 술치(術治) 그리고 무치(武治)에 통달한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했습니다. 조조는 창의성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인재의 발굴, 임기응변에 능하고, 신상필벌에 엄격하며, 위기 때마다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준 탁월한 인물로 평가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하루아침에 갈리는 전쟁 상황과 암투가 성행하는 왕실에서 자기를 보존하고 영향력을 높이는 일은 보통의 정신력으론 불가합니다. 조조는 이런 엄혹한 현실에서 처세의 달인으로 난세의 간웅으로 평가받으며 살아남아 새로운 왕조를 여는 사명을 완수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조가 중국의 질서를 회복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서진(西晉) 시대 직후부터 이미 악평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명분을 중요시하는 주자학(朱子學)이 자리를 잡은 송대(宋代) 이후로는 완전히 악인으로 평가가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마오쩌둥과 궈모뤄(郭沫若·곽말약) 등은 조조의 단점을 배제하고 영웅으로서의 진취성을 평가하면서 조조를 악인에서 봉건제를 개혁한 영웅으로 호평했습니다.한 나라에서 버림받은 인재가 적군의 밑으로 들어가면 적으로 변합니다. 인재를 알고도 쓰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세에 이름을 남긴 명군의 공통점은 사람 보는 눈이 탁월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인재를 발견해 적소에 배치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해 역사에 남을 성과를 냈습니다. 이러한 인재관을 현실에서 실천한 이가 조조입니다.

조조의 용인술은 예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았습니다. 그를 난세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독특한 용인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조는 세 번이나 구현령(求賢令)을 발표하여 천하에서 인재를 모여들게 하여 뽑았습니다. 구현령은 조조가 천하의 인재를 널리 구하기 위해 선포한 정책입니다.

조조의 구현령이 효과를 봤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당시엔 과거제와 같은 합리적인 인재 등용의 통로가 없었습니다. 또 권문세족과 지방 호족들이 인재 추천 통로를 독점하여 폐해가 막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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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철저한 능력주의 인재관을 따랐습니다. 단점 때문에 재능 있는 자를 놓치지 말라던 '취사물폐편단령(取士勿廢偏短令)'과 인재를 천거할 때는 도덕성에 구애받지 말라는 '거현물구품행령(擧賢勿拘品行令)'은 널리 알려진 경구입니다. 이처럼 조조는 사회의 틀이나 주변의 단기간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심지가 확고하지 않거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혜안이 없다면 실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조조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편견 없이 교류했습니다. 또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으면 곁에 두고 참모로 삼아 조언을 얻는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재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데 천재적인 능력과 실행력을 갖춰 현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조의 인재관은 오늘날 다양한 인재가 모이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조조는 평생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남긴 시가(詩歌)에는 전쟁터에서의 고단함과 군사와 백성들에 대한 걱정과 연민이 가득합니다. 난세에 참모습을 발휘하는 자가 진정한 영웅입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중시했던 조조의 태도 덕분에 많은 인재가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고 그 힘으로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습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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