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빛나는 생의 찬미,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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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한 남자의 얼굴로 시작되는 영화. 그 얼굴이 향하는 소소하고 뭉클한 일상. 그리고 영화는 다시 남자의 얼굴로 회귀한다. 그러나 놀라운 폭발력을 뿜어내는 얼굴로.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의 감동적 협업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
시간과 인간의 자취를 소중히 여기는 삶 조명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얼굴의 영화이다. ‘얼굴’은 주인공 ‘히라야마’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그가 영위하는 삶의 얼굴이자, 그것을 관조하는 이 영화의 얼굴이기도 하다. 벤더스는 음악과 이미지로, 주인공을 연기하는 대배우 야쿠쇼 코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애잔하고 세속적인 얼굴로, 세기를 넘어 애장될 것이 분명한 역작을 만들어 냈다.▶▶▶(관련 칼럼)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빛내준 '어느 멋진 날, 완벽한 순간'
▶▶▶(관련 칼럼) 동네 청소부로 일할 적의 행복한 기억을 소환해 준 '퍼펙트 데이즈'영화는 도쿄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가 맞는 아침으로부터 시작된다. 동네 할머니가 골목을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면 그는 싱크대에서 세수와 양치질을 마친다. 같은 동선을 백 년 넘게 해 오는 것처럼, 그는 한 치의 변주 없이 같은 발걸음과 몸놀림으로 작업복을 입고, 청소도구를 챙기고, 신발장 옆에 놓인 동전을 가지고 집을 떠난다. 현관문 밖에는 그의 작업복만큼이나 오래됐지만 정갈하게 관리된 트럭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히라야마는 챙겨 온 동전으로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받아 들고 트럭에 오른다. 그의 무드에 따라 맞는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골라 튼다. 오늘의 완벽한 모닝 루틴의 완성은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다.
그가 창밖으로 바라보는 도쿄의 풍경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가 향하는 일터가 공공 화장실, 즉 사랑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공간일지언정, 그는 그마저도 애정과 신념을 담아 도시의 때를 닦고, 그럴듯한 일상의 공간으로 가꿔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일상. 가장 좋아하는 나무 밑에 앉아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를 비집고 떨어지는 햇살을 기록하는... 영화는 그의 하루를 성실하고 빼곡하게, 그러나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이 장대한 하루는 히라야마가 잠자리에서 그가 사랑하는 문고판 책을 읽으며 잠이 드는 것으로 대략 마무리된다.영화는 러닝타임의 반 정도의 지점까지 히라야마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을 보여준다. 바뀌는 것은 그가 아침에 골라 듣는 음악, 그가 간밤에 꾸는 꿈 (흑백 스틸 이미지로 보여지는) 정도다. 철저히 히라야마의 행적(?)을 좇는 이 과정에서 영화는 (주인공의) 언어를 과감히 생략한다. 주변 인물들의 물음이나 요구에 간단히 응하는 것을 제외하고 히라야마의 감정과 의지는 그의 표정과 그가 좋아하는 존재들 (음악, 사진, 책 등)로만 표현된다.
그러한 히라야마의 일상에 ‘격변’이 일어난다. 히라야마의 조카 ‘니코’가 가출을 한 후 그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히라야마는 니코에게 방을 내어주고 골방에서 밤을 보낸다. 니코가 히라야마의 청소일에 동행하기를 원하면서 그의 하루는 새로운 루틴으로 채워진다. 니코는 삼촌의 오래된 물건들, 그리고 그 오래된 일상과 함께 하면서 그의 삶의 방식을 사랑하게 된다. <퍼펙트 데이즈>는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일을 하는 노년의 남자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는 단지 그가 청소부지만 루 리드와 더 스미스를 듣고, 윌리엄 포크너를 읽는 지식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감사해하고, 감사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히라야마가 스포티파이 (그가 음반 가게 이름으로 착각한) 대신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며 중고 문고판을 수집해서 읽는 것은 그가 시간과 인간의 자취, 그리고 지나간 세월, 즉 삶의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상의 의식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그가 화장실 청소부라서 받는 시선과 괄시가 서러운 인생의 풍파가 아니다.영화는 다시 히라야마의 얼굴로 돌아간다. 영화의 초반 시퀀스에서 등장했던 똑같은 클로즈업이지만 무언가 대단한 것이 감지되는 얼굴이다. 출근길에 운전을 하고 있는 히라야마의 얼굴은 이번에는 도시의 전경이 아닌 관객을 향한다. 그리고 그는 가장 밝은 웃음으로, 그러나 쏟아지는 눈물을 머금고 정면을 응시한다. 카메라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의 역설과 예찬이 닮긴 그의 얼굴을 전시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Feeling Good.’ 히라야마는 노래의 가사를 빌어 관객에게 그의 전언을 남긴다; You know how I feel…..그리고 영화는 한참을 더 기다린다. 우리가 그렇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그 ‘얼굴’과 ‘일상’에 공감할 시간을 남겨주면서.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가 남긴 이 고귀한 협업은 과연 루 리드와 포크너만큼이나, 혹은 그를 넘어서는 생의 찬미이자, 사의 찬미가 아닐 수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