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아니라 저질러 보고 생각하는 돈키호테가 낫지 않을까
입력
수정
[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최고 오프닝 성적에 역대급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2>는 제목에 붙은 숫자 ‘2’가 보여주듯이 속편인데요.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1편 개봉 2015년), 이 영화 1편의 부제는 ‘진짜 나를 만날 시간’이었고, 2편의 부제는 ‘새로운 나를 만날 시간’입니다.
영화
“진짜 나를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 [관련 리뷰] 사춘기 소녀로 돌아온 라일리… '속편 실망' 징크스 깬 '인사이드 아웃 2'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인 우리의 본성적 욕망입니다. 13살, 이른바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 라일리는 말 그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게 되죠. ‘진짜 나’를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나’ 또한 쉽게 찾아지지는 않습니다.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 자체도 완전 혼란에 빠져드는데요. 특히 낯선 감정들이 들이닥치면서 그나마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그래서 라일리의 자아(자존감)가 무결점(?) 상태로 성숙되고 있다고 자신했던 감정 컨트롤 본부마저도 무엇이 ‘진짜 라일리’를 표현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합니다.이런 감정의 혼돈 상황은 우리 중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죠. 라일리처럼 사춘기 시절뿐만 아니라 학교를 나와 사회초년생이 될 때도 그렇고, 만약 <인사이드 아웃3>이 나온다면 갱년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엄마가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의 각기 새로운 국면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상황들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에 빠질 겁니다.요즘은 사람들을 만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농담 삼아 E인지 I인지 묻습니다. MBTI를 정말 믿느냐의 문제를 떠나, 그저 상대의 MBTI를 물어 공감대를 마련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일종의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스몰토크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유행한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려는 정체성의 문제가 젊은 세대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뭐가 달라질까요? 왜 우리는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또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까요?
아마도 그런 앎이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라일리의 내적 감정들이 라일리의 진정한 모습을 만들어주려고 애쓰는 까닭도 결국은 라일리가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게 하려는 노력이죠.내가 무엇을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어떤 결과를 손에 쥐어야 만족감을 느끼는지, 또 그런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은 포기해야 하는지를 알 때 비로소 ‘나’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한 필요조건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거죠.
그런데 얼핏 이 당연한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 걸까요? 어떤 때는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조차 헷갈립니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욱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는 모호함은 극에 달하죠. 마치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처럼 말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이라는 것은 지금의 선택이 내 미래를 결정할 거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머릿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이 일어나고 성공의 다디단 열매와 쓰디쓴 실패와 좌절의 맛을 보는 긍정과 부정의 시나리오들이 펼쳐지죠.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주저하게 될 때도 많죠.프랑스의 생화학자인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는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로 뇌의 전두엽 부분이 부풀어서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을 계발한 탓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반면 뇌과학자인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인류가 그런 능력을 발전시킨 대가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생겨났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때 불안감이 밀려드니까요.주인공 라일리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냅니다. 물론 전 연령대가 보는 애니메이션이 비극으로 끝난다면 그건 인권침해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해피엔딩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해피엔딩을 위한 난관은 높고도 거칠어서 많은 사람이 그 난관 앞에 주저앉기도 하고, 뒤로 도망쳐 방구석에 숨기도 하지요.
사회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짐작도 어려운 요즘처럼 선택의 무게가 큰 적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삶의 방식대로 어머니 아버지가 사시고, 또 그 방식대로 자식과 손자가 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진 세상에서 범불안장애를 앓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조금 더 신중하게!’를 외치다가 마침내 어딘가로 숨고 싶고 누가 대신 결정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의 MBTI를 확인해 보는 것일까요? 나는 E라서 너는 I라서 그래 라면서?!
역설적인 것은 그런 통계적 지표에 맞춰 사람을 재단하다가는 어느 날인가에는 AI에게 내가 해야 할 선택을 일일이 물어보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나에 관한 빅데이터를 가진 AI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보다 더 잘 알 테니 말입니다. 그럼 그런 세상에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진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까닭은 ‘내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기 때문인데 말이죠.
어쨌든 진짜 나를 찾는 선택을 미루어 둘 수만은 없을 겁니다. 내가 나아가지 않으면 내가 주인공인 미래는 오지 않을 테니 말이죠. 그러니 그저 주저하는 햄릿이 아니라 일단 저질러 보고 생각하는 돈키호테가 낫지 않을까요?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주식회사 ESG경영연구소 소장
▶▶▶[관련 기사] 경외심은 어디서 나오나, 확실히 구찌 가방에서는 아니지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