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은 나에게 행운" ... 60대가 되어서야 쉽게 작업하는 법을 깨닫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오카자키 겐지로 개인전 8월 17일까지
자신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를 찾아온 겐지로 오카자키.
"코로나19로 모두가 밖에 나오지 못하던 시절, 저는 운좋게도 뇌경색에 걸렸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띈 한 노년의 작가가 손에 지팡이를 쥔 채 관객들 앞에 섰다. 뇌경색을 '행운'이라 칭한 그는 오카자키 겐지로.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조형미술 작가로, 코헤이 나와 등 일본 유명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꼽는 인물 중 하나다.그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 '폼 앳 나우 앤드 레이터'를 열고 한국 관객을 찾아왔다. 겐지로가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작품활동을 펼쳤다. 회화, 조각 등 순수 미술의 틀을 깨고 파격적인 시도를 계속했다. 건축과 조경, 퍼포먼스에서부터 로봇 공학까지, 여러 학문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겐지로 오카자키의 전시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가 열리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전경.
2년 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던 그에게 뇌경색이 찾아왔다. 뇌의 일부가 죽어 팔과 다리를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겐지로는 절망했다. 조형 예술은 이제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워만 있던 그는 불쑥 '뇌도 내가 의지로 조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겐지로의 예술 인생은 그 날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달라졌다. 회복과 재활에 전념하며 빨리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작품을 가지고 고민하고 고뇌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과거와 달리, 작업 속도는 15배나 빨라졌다.

겐지로는 "죽을 고비를 맞고 나서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이후로 슬럼프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별 게 아닌 일이 됐다"고 했다. 60대가 되어서야 '쉽게 작품활동을 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가 얻은 깨달음을 풀어낸 작품들이 나왔다. 신작 페인팅과 점토 조각들을 선보인다. 전시의 주제도 철학적이다. 논어에서 '지금 앞으로'라는 주제를 따 왔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겐지로 오카자키의 전시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가 열리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전경.
그의 회화는 캔버스가 조각조각 쪼개져 있다. 어떤 작품은 6등분, 또 다른 작품은 3등분으로 잘려 있다. 각각의 조각들이 그에게는 곧 하나의 작품이다. 쪼개진 캔버스를 마음대로 조합하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으로 모여있다고 해도 각 칸마다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한달 반까지도 시간의 차이가 난다. 겐지로는 "서양의 벽화도 하나하나 다른 스토리가 있듯, 나의 작품도 그렇다"며 "나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시간을 붙이면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겐지로 오카자키의 전시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가 열리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전경.
점토 조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병을 얻은 이후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회복의 과정처럼, 생명력이 없는 점토에 힘을 가해 새 생명을 더하는 과정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