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변주로 쉴 새 없이 질주한 레이 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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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과 페트렌코대만계 호주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이 첸은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을 계기로 세계적 스타 연주자 위치에 올랐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 롯데콘서트홀은 이틀 모두 만석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객석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구름관중 몰린 바이올린 스타
멘델스존·차이콥스키 곡 협주
리듬 음색 등 자유분방한 연주
딱딱한 바흐 곡도 독창적 해석
악단과 하모니는 다소 아쉬워
레이 첸이 지난달 28일 공연에서 연주한 것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그가 굉장히 들떠 있다는 것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 수 있었는데, 2악장을 제외하면 거의 쉴 새 없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연주했다. 그는 템포에 미세한 변화(아고긱)를 엄청나게 부여했고 셈여림도 파격적일 만큼 끊임없이 변경했다. 레이 첸은 차분한 분위기의 2악장에서는 비교적 절제된 태도와 깔끔하고 미려한 음색으로 연주했다. 1714년산 ‘돌핀’ 스트라디바리의 풍부한 음색이 잘 살아난 연주였다.그러나 3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와 서로 어긋난 대목이 많았고 음정 실수도 잦아 아쉬움을 남겼다. 레이 첸은 청중의 열화 같은 환호에 응해 앙코르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3번’ 중 ‘전주곡’을 연주했다. 역시 상당히 자유분방한 해석이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좋은 연주였다.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바흐의 곡처럼 딱딱하고 엄격해 보이는 작품에서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가 오히려 더 많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점이다.
29일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 레이 첸은 상대적으로 진지해진 표정과 자세로 연주에 임했지만 연주의 변칙성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템포 리듬 셈여림 음색 등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가 끊임없이 변화했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적잖게 나왔다는 점은 덤이다. 연주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위해 악보에서 일탈하는 것은 흔하며 심지어 어느 정도 바람직한 일이다. 다양한 해석은 작품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곡이 이렇게도 들릴 수 있구나’ 싶어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그가 앙코르로 연주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중 ‘21번’과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이 곡은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나 제3번’ 중 ‘전주곡’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전날과의 연계를 고려한 선곡 같았다) 역시 해석 자체는 비슷했지만, 이런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은 해석의 여지가 많으므로 강한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는 멘델스존의 협주곡에서 상당히 소극적인 반주를 들려줬고,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다분히 담담하고 초연한 태도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이것을 지휘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어 보였다. 레이 첸의 연주는 지휘자가 맞춰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페트렌코는 28일과 29일 이틀 모두 첫 순서로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이리안테’ 서곡을 택했다. 연주는 모두 성공적이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초점이 한층 명확하고 각 파트의 연계가 긴밀한 29일 공연이 더 정제된 편이었다.후반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가 연주됐다. 28일 공연에서는 다소 거칠지만 무척 생생한 연주를 들려줬고, 29일에는 활기는 좀 덜할지 몰라도 한층 원숙하게 다듬어진 해석을 선보였다. 제1부 ‘영웅’은 다소 혼란스러웠던 28일에 비해 잘 정돈된 29일 공연 쪽 손을 들어줄 만했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