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재산은…' 압구정·강남 PB센터, 부자 유언장 쌓여있다

WM 핵심사업으로 뜬 '상속'

법정 분쟁 피하기 위해 미리 신탁
시장규모 증가세…1년새 1조 늘어
은행 이어 증권사, 적극 뛰어들어
압구정, 강남, 한남 등 서울 부촌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 대여금고에는 각종 고액 실물자산과 금융상품 외에 밀봉된 종이 서류가 적지 않게 쌓여 있다. 은퇴 후 상속을 고민하는 슈퍼리치들이 작성해둔 유언장이다. 미리 유언을 신탁하는 유언대용신탁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슈퍼리치들의 투자자산이 다양해지면서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들도 이 유언대용신탁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1일 은행권과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올 1분기 말 3조3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조3000억원)에 비해 1조원가량 늘었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신탁회사나 금융회사에 맡기고, 본인이 사망한 후 미리 지정한 수익자를 위해 자산을 운용·관리하는 서비스다. 사후 발생할 수 있는 유족 간 갈등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고액 자산가들의 은퇴와 사망이 많아지면서 법적 분쟁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상속 재산 관련 법적 분쟁인 유류분반환 청구소송은 지난해 2035건(1심 기준) 제기됐다. 2020년 1447건, 2021년 1702건, 2022년 1872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고액 자산가의 가정 상황이 복잡해지자 미리 유언대용신탁을 찾는 경우도 많다. 별거하거나 자녀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등의 상황이 심심찮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남지역 프라이빗뱅커(PB) A씨는 “별거 중인 아내에게 가는 상속분을 줄이고 싶다거나, 은퇴 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자녀에게 상속분을 더 주고 싶다는 상담 등이 많다”며 “과거에는 이런 신탁 자체를 꺼렸는데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상담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고 했다. 또 다른 강남지역 PB B씨는 “자신이 주로 찾는 PB를 통해 유언을 신탁하고 유언장까지 대여금고에 맡긴 고객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했다.자산가들의 금융투자 자산이 다양해지면서 증권사들도 유언대용신탁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영증권 KB증권 하나증권이 유언대용신탁업을 영위 중이다. 신한투자증권도 유언대용신탁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슈퍼리치들이 은행을 중심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장 자체가 급격히 성장 중이어서 증권사를 통한 신탁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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