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으로 커피 한 잔 값도 못 번다"…각성한 개미들 결국 [김일규의 재팬워치]

"1000조엔 개인자금 각성"
예금에서 해외 주식으로 대이동

"1000조엔 개인자금 각성"
예금에서 해외 주식으로 대이동

신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 도입 6개월
해외 주식 투자 미쓰비시UFJ '오르칸' 유입액 1위
전체 계좌 개설 2.6배, 매수액 4.2배 증가
"엔비디아 등 해외 성장 기업 투자 활발"
1000조엔이 넘는 일본 가계의 현금과 예금이 해외 주식 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연간 투자 한도와 비과세 보유 한도를 대폭 늘리고, 비과세 보유기간을 무기한으로 바꾼 새로운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를 통해서다.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신(新) NISA’가 도입된 뒤 미쓰비시UFJ자산운용의 인기 펀드 ‘오르칸’은 투자신탁 매수 순위에서 5개월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오르칸은 ‘eMAXIS Slim 전 세계 주식(All Country)’의 약자다. 전 세계 주식에 투자하는 지수와 연동을 목표로 하는 투신이다.오르칸은 특히 신탁보수(연 0.05% 안팎)가 저렴해 인기를 끌고 있다. 연초부터 지난달 21일까지 순유입액은 1조3000억엔(약 11조2000억원)에 달했다. 잔액은 3조8000억엔 규모로 성장했다. 오르칸을 포함한 1~5월 해외 주식형 투신 순유입액은 5조4284억엔으로, 전년 동기의 약 다섯 배에 이른다. 특히 미국 반도체 대기업 엔비디아 등 해외 성장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한 모습이다.

일본 증권사 10곳의 신 NISA 계좌 개설 건수는 1~5월 기준 224만건에 달했다. 전년 동기(기존 NISA 기준) 대비 2.6배 증가했다. NISA를 통한 1~5월 매수 금액은 6조6141억엔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2배 늘었다. 니혼게이자이는 “해외 주식형 투신을 중심으로 개인 자금의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며 “개인 자금이 각성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가계를 자극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일본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이 2%대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지난 4월까지 2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역대 최장기간이다.일본 가계는 더 이상 은행 예금에 의존할 수 없다. 시중은행에 100만엔을 맡겼을 때 이자는 연 250엔 정도에 불과하다. 세금을 빼면 200엔으로, 커피 한 잔도 살 수 없다. 지난달 라쿠텐증권이 개최한 신 NISA 세미나의 한 참석자는 “은행 예금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취직 후 적립식으로 미국 개별 주식과 해외 주식형 투신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NISA(성장투자형 기준)는 연간 투자 한도를 종전 120만엔에서 240만엔으로 높였다. 비과세 보유 한도는 600만엔에서 1200만엔으로 상향했다. 최대 5년이었던 비과세 보유기간은 무기한으로 개선했다. 일본 가계가 예금만으로는 금융자산의 증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축에서 투자로’의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의 관측이다.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이 주축이었던 일본은 과거 가계 저축이 기업으로 흘러가 경제 성장을 지탱해왔다. ‘거품 경제’ 붕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가계가 보유한 현금 및 예금은 3월 말 기준 1118조엔으로, 여전히 전체 금융자산의 50.9%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12.6%), 유로존(35.5%)을 크게 상회한다.다만 일본 가계의 외화자산으로의 이동은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해외 주식형 투신권을 사려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자산운용에 따른 실수요의 엔 매도세가 지속되면 엔저가 멈추지 않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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