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기로 유명했던 서평가가 직접 시대비평에 나서보니 [서평]


“위기 이겨낼 힘, 변방의 아웃사이더들에게서 나온다”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돌베개
332쪽|1만9000원
‘영미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 미치코 카쿠타니는 이렇게 불렸다. 그는 1983~2017년 뉴욕타임스 서평가였다.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서평은 날카롭고 까칠했다. 직설적인 비평에 유명 작가들과도 곧잘 다퉜다.

뉴욕타임스를 나온 뒤 그는 책을 쓰는 작가로 전향했다. 서평에서 벗어나 보다 광범위한 문화 및 정치 비평에 나섰다. 최근 국내 출간된 <거대한 물결>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미치코는 현대 사회를 불안한 눈으로 본다. 19세기 말 미국의 도금 시대 혹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에 비유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회 분위기, 경제적 불평등, 반이민 정서, 외국인 혐오 범죄 등 지금 미국 사회를 감싸는 이런 정서들이 그때와 닮았다는 것이다.

서평가답게 다양한 인용문이 등장한다. 그는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인용해 “사회적 원자화가 길을 잃고 외로운 개인을 폭력적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운동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현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같은 극단주의자들 탓만은 아니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의 유해성에 주목한다. 정보 과부하, 필터 버블, 선정주의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대 사회는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말한다. 희망이 있다면 위기는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1918년 스페인 독감 후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었고, 보건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신설됐다.

미치코는 변방의 아웃사이더들이 주류의 관성화된 틀 밖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이민자, 여성, 소수 인종 등 비주류의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눈에 띄는 문장이 많다. “인터넷은 문화와 직업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려 했으나 끊임없이 확장되는 보르헤스식 미로가 되고 있다” 같은 문장이다. 다만 저자만의 새로운 통찰은 찾기 힘들다. 수많은 인용이 글을 화려하게 만들지만, 너무 많은 인용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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