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참 귀찮게 군다 싶은데도, 빙긋 웃고 있는 9미터짜리 탱화

[arte] 이보름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유물들

청량산 괘불탱
중생의 마음에 꽃비가 내렸다
2024년 5월 15일, 부처님의 자비로 직장인은 하루 동안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집에서 한가로이 누워있다가 별안간 머리 뒤쪽이 쭈뼛했다. ‘지옥이 있다면, 나는 지옥에 가겠구나’ 무언가 엄청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누워있을 수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려시대 철 부처님 내가 함부로 대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잘 모시려고 한 노력이라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해서 속죄했다고 끝이 아니구나. 내가 또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 어리석은 중생은 그것도 잊어먹고 오늘 부처님 덕에 쉰다고, 부처님의 자비를 감히 입에 올렸구나’ 나는 또 불경한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이번엔 조선시대 부처님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가나문화재단의 소장품 중에는 보물이 한 점 있다. 바로 <청량산 괘불탱>이다. 세로가 9미터 50센치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비단에 화려하고 아름답고 위용이 넘치는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온화한 표정으로 서 계시는 작품이다. 대단한 크기 때문에 평상시엔 모든 시설을 잘 갖춘, 안전한 수장고 안 커다란 괘불궤 속에 말려(?) 계시는데, 나는 부처님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휴식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뜻을 거스르는 불경한 일을 또 저지르고야 말았다.
청량산 괘불탱, 조선 1725년, 보물, 가나문화재단 소장 /사진. ©가나문화재단
잘못을 고백하기 전에, 먼저 앞 단락 속 생경한 단어 몇 개를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맞지 싶다. 괘불은 한자로 掛佛. 이렇게 쓴다. 掛, ‘걸 괘’ 자이니까, '걸어놓는 부처’라는 뜻이다. 그리고 괘불궤에서 궤(櫃)는 나무 상자니까, 괘불을 넣도록 제작한 목상자라는 말이 되겠다. 괘불은 불교에서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할 때 제작해서 걸어두는 대형 불화를 말한다. 괘불탱의 ‘탱(幀)’은 ‘그림 족자’라는 뜻이다.

의미나 유래 같은 상세한 내용은 검색하면 나오니까 넘어가고, 용도만 쉽게 설명하자면 공연장의 대형 스크린 정도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 같다. 저 멀리 콩알만 하게 보이던 임영웅이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거다. 대신 부처님은 실제 살아계시는 건 아니니까, 괘불의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대중을 압도하여, 마치 의식을 위해 부처님께서 강림하신 것 같은 느낌,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청량산 괘불탱>은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기억난다. 사진 촬영과 언론 공개를 위해서 날씨가 청청한 겨울날, 잠시 몇 시간 야외에 걸려 있었던 순간이. 그때는 사실 ‘남의 일’일 뿐이라 그냥 감탄이 전부였는데, 이런 게 바로 인연인 것인지, 이제는 그 부처님이 우리 수장고에 계시니 새삼 놀랍다.
2015년, 서울옥션 경매 출품 당시 공개 설치 전경 /사진. ©가나문화재단
자, 이제 내 잘못을 고할 때다. 구구절절 변명은 접어두고, 내 잘못을 짧게 요약해 보자면 ‘감히 짜증을 낸 죄’ 정도로 할 수 있겠다. 이젠 다들 잘 아시겠지만, 보물이나 국보 같은 국가유산(문화재의 새 이름)들도 개인이나 사립 기관이 소유할 수 있다. 소유는 개인이 할 수 있는 대신, 국가가 가끔씩 잘 있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간간이 체크한다. 국가유산청(문화재청의 새 이름)에서, 각 시•도에서, 아니면 용역사업을 수주한 다양한 전문기관에서, 보관 환경이 쾌적한지, 각종 설비는 잘 되어있는지, 실제 작품이 멀쩡한지, 몰래 다른 곳에 옮기지는 않았는지, 복원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등등을 세세하게 살핀다. 이게 한 번에 정리되어 오는 게 아니다 보니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성가실 때가 많다. 엊그제 한 것 같은데, 지난달에 했는데, 무슨 조사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겁 없이 짜증부터 낸 이번의 일도, 결국 그런 성가심 때문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이 부처님이 쾌적하고 안전한 곳에 잘 계시냐고 확인하고 간 것 같은데, 또 무슨 조사를 해야 한다고 공문이 왔다. ‘저번에 했는데요?’라고 되물어 봐도 이전과 다른 목적의 것이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르긴 달랐다. 국가유산청에서 지원하는 ‘정밀조사’ 사업이라고 했다. 우리 수장고에 잘 모셔진 부처님을 정해진 어떤 장소로 옮겨 가서, 세로 9미터 50센치, 가로 폭 4미터 50센치나 되는 거대한 괘불을 다 펼쳐서, 비단과 안료, 보관상태를 상세히 조사해야 한다는 거다. 결과에 따라 복원이 필요하면 복원사업 예산이 편성될 거고, 보관 환경에 보완이 필요하면 그 예산이 편성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다 우리 보물이 잘 보존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소리였다.

일단, 조사하는 건 좋은데, 꺼내고 다시 넣을 일이 너무 고민이었다. 괘불궤만 해도 가로로 5미터나 되니, 이걸 싣고 가려면, 또다시 들여오려면 대체 얼마만 한 차가 와야 하는 것이며, 수장고 코앞으로는 큰 차를 댈 수 없으니 차가 들어올 수 있는 도로까지는 사람이 끌고 나와야 하는데, 그럼 몇 명의 인원이 필요한 것인가. 프라이빗 수장고라 외부 인원이 출입할 수도 없으니, 일정 지점까지는 우리 직원들이 하고, 거기서부터 국가유산청 사업 조사팀이 투입될 수 있는 상황인데, 직원들의 저항은 어떻게 잠재우나, 그리고 이 난리 동안 통행이 마비될 도로 때문에 생길 민원은 또 어떡하나, 아 대체 몇 명의 사람들에게 원성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짜증이 치밀었다.

약속된 그날,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 선 어투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감시를 했다. 긴장한 손은 허리춤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결론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길을 막았다고 거친 말로 항의하는 아저씨 몇 명의 고함을 뒤로한 채, 작품은 잘 운반되었고, 잘 돌아왔다.
유물 조사 현장 / 사진. ©이보름
침대맡에 웅크리고 앉아, 마지막으로 본 <청량산 괘불탱>의 모습을 생각했다. 소장기관 자격으로 정밀조사를 참관하러 갔을 때다. 그 큰 괘불이 체육관 한가운데 펼쳐져 있었다. 평안해 보이는 얼굴이 떠올랐다. 눈물이 날 뻔했다. 병상에 누워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기분이랄까, ‘하나도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 그 얼굴이 기억났다.

이제 알았다. 나는 어차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거 말고는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사람 불편하게 짜증을 부리는 것보다는 그냥 온화하게 있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낫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을 위한답시고 불편한 공기를 만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동을 한 거다.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크게 숨을 쉬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아, 이게 부처님 설법에 감화해 중생의 마음이 청정해진다는, 꽃비가 내리는 그 순간인가 보다.
정밀조사 중인 〈청량산 괘불탱〉 - 오른손에 연꽃가지를 살짝 쥐어 들고 있는 본존불. 이는 영축산 설법 때 석가와 가섭존자의 ‘염화미소’ 고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사진. ©이보름
<청량산 괘불탱> 속 석가여래 부처님은 다시 둥글게 말려, 괘불궤 속에 들어가 수장고에 잘 계신다. 정밀조사 결과는 언제쯤 나오려나, 기다리고 있다. 모두 부처님을 위한 마음이었고 보물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니 다 잘될 거다. 내일모레는 또 어느 기관에서 국가유산 조사를 하러 나온다.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했던 <철조석가여래좌상>이 조사 대상이다 (관련 칼럼 읽기). 꼭 맞는 나무상자에 편히 들어가 계신데 다시 또 꺼내야 한다.작년에도 뭔가 조사를 했는데, 다른 이유로 또 나온다. 여기까지 하면 귀찮은 건 다들 인정해 주시겠으나, 짜증을 내어 무엇하나. 이번에는 곤두서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할 거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할 것이다. 모두 부처님을 위한 마음으로 움직일 테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다 잘 끝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 도와주실 거다. 꽃비로 촉촉해진 중생의 마음은 아직 평화롭다.

이보름 가나문화재단·가나아트 기획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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