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 손가락'에 벌벌 떤다"…잘 나가던 기업들 '날벼락'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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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흔드는 리스크 '남혐''집게손가락' 제스쳐는 어쩌다 남성 혐오(남혐)의 아이콘이 됐을까. 엄지와 검지를 들어 올려 'ㄷ' 자를 그리는 이 손 모양은 사회적으로 '작은 크기'를 말할 때 사용돼 왔다. 한국에선 이 손 모양이 급진 여성주의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사용되면서 남성 신체 부위를 조롱하는 의미로 변질됐다.
르노 코리아, '남혐' 논란에 치명상
볼보도 '남혐' 홍보물 재조명
지난해 게임 업계를 한차례 휩쓸었던 그 '숨어있던' 손가락은 최근 들어 다시 등장해 여러 기업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업 홍보물에서 이 손 모양을 찾는 '숨은 남혐 찾기' 현상까지 벌어지며 홍역을 앓고 있다.4년 만의 신차를 내놓은 르노 코리아는 유튜브에 홍보 콘텐츠를 올렸다가 '남혐' 브랜드로 낙인찍혔다. 지난달 29일 공식 유튜브 '르노 인사이드'에 신차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 홍보 영상이 게재됐다. 이 영상에 등장한 여성 매니저는 신차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 손가락'을 떠올리게 하는 손동작을 취했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남성 신체 부위를 조롱할 때 쓰는 '그 손가락' 아니냐", "차량은 남성 구매자가 많을 텐데 홍보를 '남혐'으로 해 버리면 어떡하냐", "차량 보고 칭찬하는 반응 많았는데 하루아침에 손가락 때문에 망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논란이 커지자 르노 코리아는 영상을 삭제하고 해당 직원의 직무를 정지시킨 후 조사에 착수했다. 회사는 "최근 발생한 당사의 사내 홍보용 콘텐츠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셨을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관련 논란에 깊은 우려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사과했다.그러면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조사위를 통해 객관적이고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얼굴까지 나오는 데 직원이 의도를 갖고 그런 손동작을 했겠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불필요한 동작으로 오해를 샀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네티즌들은 문제의 직원에 대한 르노의 대처가 충분치 않다며 직무수행 금지가 아닌 해임 및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이는 비단 르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달 볼보그룹 코리아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지난달 13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볼보의 홍보물이 게재됐다. 해당 포스터에는 '집게손가락' 제스처를 취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글쓴이는 "우연의 일치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적나라한 집게발 손가락이 있다"며 "내부 직원 짓인지, 외주를 맡긴 일러스트 업체 직원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너무 치욕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조용히 홍보물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손가락이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것은 지난해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을 통해서다. 문제가 된 영상은 스튜디오 뿌리 소속의 한 애니메이터가 의도적으로 남성 혐오의 메시지를 넣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같은 제작사에 영상 외주를 맡긴 다른 게임 제작진도 이날 진상 파악에 나섰다며 부적절한 표현이 담긴 다른 영상도 확인했다고 공지했다.
회사는 곧장 홍보물을 삭제했으나 논란은 계속됐다. 일각에선 "남성 혐오는 억지"라는 비판이 나왔고 여성단체에선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억지 논란을 멈추라"고 촉구하며 넥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후 이들을 향한 칼부림 예고까지 등장해 경찰이 글 게시자를 추적하는 일도 벌어졌다.
GS25도 이벤트 홍보 게시물에 이 손가락 디자인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문제의 홍보물을 제작한 디자이너, 마케팅팀장 등을 징계했다. 이에 앞서 카카오뱅크, 신한은행, 교촌치킨, BBQ, 무신사, 스타벅스RTD 등도 해당 이미지를 사용한 홍보물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혐오 표현을 연구해 온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 표현의) 핵심은 '차별을 재생산하는지'의 여부"라며 "남성과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