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운송노조 해마다 불법파업…아파트 공사장 40곳 '셧다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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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비 올려달라" 배짱 휴업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의 불법 파업 탓에 2일 수도권 주요 레미콘 공장이 사실상 멈춰 섰다. 서울 내 공급될 예정인 아파트 40개 대단지의 레미콘 타설 공정이 중단되는 등 주요 건설 현장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이익단체나 다름없는 이들의 떼쓰기식 배짱 파업이 장기화하면 건설 현장은 물론 관련 전·후방 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출하량 평소 1~10% 수준 급감
수도권 5만가구 건설공사 차질
"일괄 인상" vs "개별 도급 계약"
파업 장기화땐 공사비 부담 커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레미콘 운송노조) 수도권 남·북부본부는 레미콘 운송비 인상과 운송단가 단체 협상을 요구하며 지난 1일 집단 파업에 들어갔다. 2022년 7월 후 2년 만이다. 레미콘 운송노조는 자신 소유의 레미콘 트럭을 보유한 개인사업자 모임인 만큼 노조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운송을 거부하면 불법 파업으로 간주된다.
이들의 파업으로 유진, 삼표, 아주 등 국내 주요 레미콘업체의 출하량은 평소 대비 1~10% 수준으로 줄었다. 제조사들은 회사 직영차와 용차(대여 차량) 운영을 통해 일부 공장을 가동했지만 이마저 레미콘 운송노조 기사들이 공장 앞을 막아서 출하에 차질을 겪었다. A사 관계자는 “전날까지 휴업에 참여하지 않은 운송기사 등을 통해 건설 현장에 납품했지만 파업 참가자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이런 우회 경로도 막혔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건설 현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GS건설 등이 공사 중인 서울 지역 아파트 공사 현장 60곳 중 40곳은 이날 레미콘을 조달받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 가구 수로는 약 5만 가구로 추산된다.레미콘 운송사업자들의 불법 파업은 지역별로 1~2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고질적 문제다. 이번에는 운송비 인상률을 정하기 전에 단체 협상 여부로 운송기사와 제조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레미콘 운송노조 측은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를 하나로 통합해 운반비 단가 계약을 맺자고 요구했다. 직전 협상이던 2022년 레미콘 제조사 모임인 레미콘 발전협의회가 통합 협상을 받아들인 만큼 이 약속을 지키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제조사 측은 단체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조사들은 수도권을 14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 운송단가 협상을 하겠다고 맞섰다.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안에서도 현장에 따라 상황이 제각각인데 일괄적으로 똑같이 인상할 수는 없다”고 했다.
최근 고용노동부 산하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레미콘 운송노조를 노동조합법상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업계는 정부 판단을 근거로 제조사와 운송사업자가 개별적으로 도급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레미콘 운송노조와 제조사 측은 이날 현재까지 협상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파업이 장기화하면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이나 일반분양 당첨자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공사 기간이 지연되면 아파트 건설을 위해 조달한 금융 비용이 늘어나는데 이 비용은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나 일반분양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형창/박진우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