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끝나지 않는 사전청약 '카오스'

뒤늦게 폐지했지만 혼란 지속
오락가락 정책에 당첨자만 피해

이유정 건설부동산부 기자
서울 지역 공공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지난 1일 “공공분양 주택을 조기 공급하려는데 한국부동산원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부동산원은 청약홈 운영 등 청약 시스템을 담당하는 공기관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 10-2단지’의 공공분양 주택 사전청약(사전예약)을 위해 주택관리번호 부여 등 업무 협조를 부동산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게 SH공사의 설명이다.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부동산원도 사정은 있다. 정부가 2021년 7월 부활한 공공분양 아파트 사전청약 제도를 지난 5월 공식적으로 폐지한 마당에 국토부의 결정과 의중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모든 논란의 시발점은 실패한 정책으로 꼽히는 ‘사전청약 제도 부활’에 있다. 사전청약은 일반적으로 아파트 착공 때 진행하는 청약 접수(선분양)를 1~2년 정도 앞당겨 하는 제도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적용했다가 폐지했다. 2021년 문재인 정부가 다시 도입한다고 했을 때도 전문가들은 사업 지연과 취소, 분양가 상승 등 각종 불확실성에 따른 문제가 똑같이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우기던 정부는 결국 2년10개월 만에 제도를 폐지했다.

부랴부랴 제도를 없앴다고 해서 혼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민간 사전청약 대상지인 경기 파주시 운정3지구 3·4블록 시행사는 지난달 28일 사업 취소를 선언했다. 2022년 6월 사전청약에 당첨돼 본청약과 입주일만 기다리고 있던 당첨자(804가구)는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2년간 더 올라버린 집값과 날려버린 청약 기회에 대한 기회비용은 정부만 믿고 있던 당첨자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아왔다. 급등한 공사비 등으로 언제 어떤 사업지가 또 ‘백기’를 들지 알 수 없다.

‘SH공사와 부동산원 사태’처럼 공공 영역의 혼란도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주택 공급 문제가 심각하다면서도 “토지 보상이 완료된 착공 시점에 사전청약을 받는 SH공사 사업지는 보상도 안 된 땅을 사전청약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례와 다르다”는 주장에 침묵하고 있다. 정부는 연초 “SH공사 사업지인 서초구 성뒤마을과 송파구 창의혁신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하겠다”고 자진해서 발표까지 해놓고, 이제는 “없던 일로 하자”는 입장이다. 이 같은 정부의 행태는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과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주거정책 목표에 역행한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과 사업의 실질은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고집이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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