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 써본 흑인 유튜버 '탄식' 한 달 만에…'화들짝'

진격의 K웨이브
(4) 대세는 K뷰티…글로벌 무대서 '화장발' 통했다

3만개 'K뷰티 군단' 세계를 물들이다
화장품 판매기업, 6년 만에 3배로
수출로 가전 제쳐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K콘 재팬’의 CJ올리브영 팝업매장.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최대 번화가인 시부야의 쇼핑몰 ‘로프트’. 2층 뷰티 매장은 한낮인데도 1020세대로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웠다. K뷰티 매대에서는 달바, 바이유어, 오브제, 토리든, 티르티르 등 낯선 화장품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해외 유통채널에서 부문별 판매 순위 1~2위를 휩쓰는 K뷰티 브랜드다.

K웨이브의 파도가 가장 거세게 몰아치는 분야는 글로벌 뷰티 시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화장품 판매 업체는 3만1524개로 처음으로 3만 개를 넘었다. 2017년 1만 개를 넘어선 지 6년 만에 세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3만 개 K뷰티 군단’의 위력은 수출 전선에서 드러난다. 올해 1~6월 화장품 수출액은 48억1000만달러(약 6조65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7.8% 늘었다. 주요 품목 중 반도체, 컴퓨터, 선박 다음으로 증가율이 높다. 수출액은 2차전지와 가전을 앞질렀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전체 수출액은 1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2세대 K뷰티’ 열풍은 수많은 중소·신진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필두로 한 ‘1세대 K뷰티’가 중국 시장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 등으로 영토를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화장품의 TSMC’로 불리는 코스맥스와 콜마 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 외국인 핫플이 된 CJ올리브영 등이 어우러져 강력한 K뷰티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평가다.

인종별 '맞춤 쿠션'으로 전세계 밀착…K뷰티 '佛 아성' 넘어선다
신속한 피드백이 혁신 비결…중국夢 벗어나 제2 전성기

“K뷰티가 비판을 수용하고 제품을 개선했다는 게 진짜 멋지다.” 구독자 326만 명을 보유한 미국 흑인 뷰티 크리에이터 달시는 지난 5월 24일 유튜브 채널에 쇼츠를 올렸다. K뷰티 색조 브랜드 티르티르의 쿠션 파운데이션이 피부에 딱 맞는 어두운 톤이어서 만족한다는 내용이었다. 조회수 3880만 회를 넘긴 이 쇼츠에는 K뷰티의 빠른 대응과 제품 기획력을 칭찬하는 댓글이 1만 개 넘게 달렸다.

불과 한 달 전 달시는 ‘한국 파운데이션 중 가장 어두운 색’이라는 쇼츠에서 자기 피부보다 밝은 색깔의 티르티르 제품을 바르며 아쉬워했다. 티르티르는 더 어두운 색깔의 ‘마스크 핏 레드 쿠션’을 개발해 달시에게 선물했다. 흑인 피부에 맞는 K뷰티 쿠션이 출시됐다는 소식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 제품은 지난달 초 한국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 판매 1위에 올랐다.

日에선 이미 프랑스 추월

글로벌 유통업계에서는 K뷰티의 최고 경쟁력으로 ‘빠른 혁신’을 꼽는다. 일본 오프라인 뷰티 유통 채널인 아인즈토르페의 이시카와 가오리 총괄본부장은 “시세이도와 가오 등 J뷰티 브랜드는 스테디셀러 판매에만 치중해 젊은 층 사이에서 진부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반면 K뷰티는 신상품 출시 속도가 매우 빨라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은 뷰티산업의 본산지로 여겨지는 프랑스와 호각을 다투는 핵심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화장품 수입 시장에서 한국산의 점유율은 36.5%로 프랑스(26.8%)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도 16.5%로 1위인 프랑스(17.3%)를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더욱 고무적인 건 수출국 다변화다. K뷰티는 그동안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었다. K뷰티 ‘투톱’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시장에서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한한령’과 ‘애국 소비’ 등으로 K뷰티 영향력이 축소되며 위기가 찾아왔다. 2022년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15.9% 줄었다. 화장품 수출 감소는 2010년대 이후 처음이었다.

이대로 주저앉는 듯했던 K뷰티는 지난해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썼다. 대중국 수출이 2022년보다 23% 줄었는데도 전체 수출은 오히려 6.4% 늘어난 것이다. 반전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역에서 펼쳐졌다. 지난해 K뷰티 수출은 유럽 시장 관문인 네덜란드에서 전년 대비 110.5% 급증했다. 미국(44.7%)은 물론이고 영국(57.7%), 인도네시아(41.9%), 베트남(27.3%) 등에서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K뷰티 표방한 브랜드·제품도 등장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가 받는 대접도 달라졌다. 일본 아인즈토르페는 작년 11월 한국 화장품업체로는 처음으로 브이티와 직매입 거래를 시작했다. 대형 유통 채널이 중간 대리상을 거치지 않고 K뷰티 브랜드와 직접 거래처를 튼 것이다.

일본 최대 드러그스토어인 마쓰모토기요시는 최근 도쿄 시부야 매장에 아모레퍼시픽 전용 코너를 열었다. 라네즈와 에뛰드, 에스트라, 이니스프리 등 6개 브랜드를 한곳에 모았다. 일본 뷰티 매장에 특정 기업 브랜드 전용 코너가 들어선 건 이례적이다.

아예 K뷰티를 표방하는 현지 브랜드도 속속 나오고 있다. 독일에서는 ‘YEPODA(예쁘다)’라는 뷰티 스타트업이 K뷰티를 모토로 한국 코스맥스와 협력해 브랜드와 제품을 선보였다. 일본에서 판매 중인 ‘Wonjungyo(원정요)’는 유명 K팝 아이돌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원정요 씨와 일본 기업이 합작해 출시한 브랜드다.나카무라 히데노리 아모레퍼시픽 일본법인 부장은 “라네즈의 ‘립 슬리핑 마스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자 시세이도와 오르비스 등 J뷰티에서 유사 제품을 내놓는 등 K뷰티를 따라 하는 ‘미투 상품’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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