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엔 세금폭탄"…英·佛 부자들, 자산 팔아 뜬다

'부자 증세' 움직임에 반발

총선 승리 유력한 英 노동당
교사충원 등 공약실현 위해
자본이득세율 인상 가능성

강경우파 우세 佛, 부유세 부활 조짐
스위스·스페인 등 이주 문의 폭주
영국 고액 자산가의 탈(脫)영국이 본격화하고 있다. 4일 영국 총선에서 집권이 유력한 노동당이 세수 확보를 위해 자본이득세율을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프랑스에서는 부유세 확대를 우려하는 자산가들이 인접국으로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英 부호, 자산 매각 러시

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자산관리 업체들의 발언을 인용해 영국 자산가들이 주식·부동산 등을 매각 중이며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사업가는 영국 투자를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영국 노동당이 집권해 자본이득세율을 높이기 전에 자산을 팔아넘기는 게 낫다는 계산에 따른 조치다. 영국 회계 법인 PKF프랜시스클라크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자산과 투자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거나 단기·중기적으로 사업 철수를 고민하는 개인은 현재 세율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산을 빨리 처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영국은 종합소득 과세표준에 자본소득을 더한 금액이 종합소득 기본세율 구간 이하면 10%, 구간을 초과하면 20% 자본이득세를 매긴다. 부동산 양도소득에는 각각 18%, 24%, 펀드 투자 성과 보수에는 각각 18%, 28% 세율이 부과된다.

노동당은 지난달 13일 선거 공약을 발표하며 자본이득세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의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는 명목하에 법인세·소득세·국민보험료 인상 가능성을 일축한 것과 비교해 자본이득세율을 높이는 문은 열어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보수당은 선거 공약에 ‘자본이득세율을 올리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노동당이 침묵하는 상황에서도 자본이득세율 인상 가능성이 나오는 것은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세수를 확보할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차기 정부는 세금을 그대로 둔다는 전제하에 2029년까지 연간 190억파운드(약 33조4800억원) 예산을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공립 교사 충원, 국민보건서비스(NHS) 종사자 증원 등 노동당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노동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공공서비스 재건을 위해 상속세·자본이득세율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가디언은 지난달 21일 당 고위 관계자 말을 인용해 노동당이 현재 24%인 부동산 자본이득세율을 소득세율과 같은 40%로 인상하는 급진적 방안부터 2주택을 판매할 때 자본이득세율을 28%로 높이는 방안까지 모두 열어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최대 80억파운드(약 14조1000억원)를 확보한다는 계산이다.

○스위스행 이삿짐 싸는 佛 자산가

프랑스에서도 자산가들이 부유세 부활에 대비해 ‘비상 대책’을 세우고 있다. FT는 프랑스 변호사·세무사·자산관리사에게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로 임시 이주를 문의하는 자산가의 연락이 폭주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이는 좌파 동맹 신민중전선(NFP)과 강경 우파 국민연합(RN) 중 어느 쪽이 의회 권력을 확보하더라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유세 축소’ 정책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10월 일종의 부유세인 연대세(ISF) 항목 중 부동산은 남기고 요트·슈퍼카·귀금속 등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1989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도입한 연대세는 130만유로(약 19억4000만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보유액 대비 0.5~18%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NFP는 마크롱 대통령의 부유세 축소를 되돌리고 부유세를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RN은 금융소득으로 연대세 과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지난달 18일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인 수백만 명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에 부유층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극부유층, 초부유층에도 상당한 세금 혜택을 줬다”며 “나의 우선순위는 항상 노동자 계급과 중산층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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