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치닫는 지배구조법

금융업계의 우려에도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어제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책무구조도란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와 관련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고객책임자(CCO) 등 C레벨 임원들과 준법감시인·위험관리책임자 등 일부 직원의 책무를 명확히 정해놓은 문서를 가리키며 금융회사는 이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책무구조도를 보고 CEO를 포함해 책무 임직원이 ‘상당한 주의’를 다해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해임 권고 등 제재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사고는 2020년 이후에도 시중·지방은행 직원의 거액 횡령,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책임 소재를 가리고 제재를 가하는 것만이 금융사고 발생을 줄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책무구조도 역시 영국이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사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처럼 시시콜콜하게 법규를 만들지는 않는다. 임원을 제재하는 것보다 금융회사에 대한 과징금을 높이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사고를 친 임직원 처벌은 사법당국의 영역으로 두고 있다.

깨알같이 적힌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의 혁신을 가로막을 공산도 크다. 특히 경영진은 사후적 불확실성 때문에 새로운 금융서비스 도입을 꺼릴 수 있다. 금융당국은 지금부터라도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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