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차등 6년 연속 무산…"소모적 결정구조 이젠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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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委 전원회의 파행“노사 대리인이 협상하는 방식의 현행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정부가 책임지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지는 개편 목소리
매년 파행 거듭하다가 표결
36년간 합의로 결정된 건 7번 뿐
"저성장 시대 안 맞는 낡은 제도"
노사공 '합의' 시스템이 문제
공익위원이 '캐스팅 보트' 쥐자
"정치적 결정한다" 비판 받아
문재인 정부도 제도 개선 추진
지난 2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구분(차등) 적용이 무산된 소식을 전해 들은 전직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매년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는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 개편을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대와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낡은 최저임금위원회의 틀을 전반적으로 손볼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시스템
최저임금제도를 규정하는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1988년부터 시행됐다. 그 후 36년이 지났지만 근로자와 사용자,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합의 결정’하는 근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위원회는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 9명, 노동계 추천 근로자위원 9명, 경영계 추천 사용자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최저임금 안건 심의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요구안을 내면 양측의 금액 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노사 간 합의가 안 되면 표결로 결정된다.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다. 임금 수준을 놓고 노사가 매번 팽팽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합의제 기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2일 회의에서도 사용자위원 측이 요구한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적용 여부를 놓고 표결한 결과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2020년도 최저임금을 정한 2019년 최저임금위 이후 6년 연속 구분 적용이 무산됐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35년간 합의 형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된 것은 일곱 차례에 그친다.과거 고성장 호황기에는 이런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으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상승률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가 본격화된 상황에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수준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면서 사회 곳곳에서 최저임금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 쟁점화되는 결정 구조 바꿔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익위원 뒤에 숨어 정치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현행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료들이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꺼리는 이유도 “구분 적용 업종 선정을 놓고 노사 분쟁이 정치 쟁점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정치적 이유에서다. 정부가 정치권 눈치를 보다 보니 최저임금을 정하는 산식을 껴맞추기에 급급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공익위원들은 2022년과 2023년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할 땐 ‘국민경제 생산성 상승률(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취업자증가율)’ 산식을 들고나왔다가 집중포화를 맞자 2024년 적용 최저임금에서는 산식을 비공개했다.문재인 정부도 이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2019년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주먹구구식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눠 이원화하고 구간설정위를 국회에서 뽑은 전문가로 구성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야당으로 돌아선 이후 이런 제도 개편안에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이해관계자 집단이 위원을 추천하는 현행 방식 대신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익위원으로 위원들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보기술(IT) 혁신 등으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노동 형태가 등장했는데, 여전히 산업화 시대 공장 노동을 기준으로 한 시급 형식의 최저임금 제도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