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주년 글래스턴베리 최고 굿즈는 갓나온 신문? 낮엔 춤, 아침엔 요가

지상 최대의 락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를 가다 (1)
GlastoFest2024 (c)Rik-Mav
“글래스턴베리는 단순한 음악축제가 아닙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문화기관이죠." (힙합 래퍼 제이지)

매년 6월 말이 되면 인구가 8000명 뿐인 영국 남서부의 작은 농장마을이 20만명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종도 국가도 종교도 모두 다른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음악과 예술을 즐기는 것. 올해로 54주년을 맞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얘기다.
Glastofest2024 (c) AndrewAllcock
Glastofest2024 (c)Tom-Widd
글래스턴베리는 락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킷리스트에 품고있는 곳이다. 데이비드 보위를 비롯해 롤링스톤즈, 건즈앤로지즈, 오아시스 등 전설적인 락스타부터 폴 매카트니, 스티비 원더, 비욘세, 아델 등 세계인의 팝 아티스트가 두루 찾아 잊지 못할 무대를 만들어왔다. “글래스턴베리는 아티스트를 한계까지 밀어붙여 다른 차원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도록 한다”는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말처럼 20만명의 관중이 환호하는 장면은 수 천, 수 만 번 공연을 해온 아티스트들에게도 경이로움 그 자체다.
Glastofest2024 (c) Rik Mav
올해 글래스턴베리의 헤드라이너는 콜드플레이를 비롯해 팝 가수 두아 리파와 R&B 가수 SZA가 장식했다. 올해는 다양한 한국인 아티스트들이 메인 무대에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이돌그룹 세븐틴은 케이팝 아티스트 최초로 메인 무대에 서며 K팝의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세계 무대를 휘젓는 한국인 DJ 페기 구는 ‘별이 빛나는 밤’ 서브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로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룹 바밍타이거도 서브 스테이지에 올라 관객들을 뜨겁게 달궜다.
Glastofest2024 (c)Matthew Cardy
글래스턴베리는 헤드라이너가 발표되기 4개월 전 60만원(360파운드)짜리 티켓을 판매한다. 환불은 공연 한 달 전까지만 가능하고 양도도 불가능하다. ‘누가 무대에 서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준비된 21만장의 티켓은 전세계에서 약 100만명이 경쟁을 벌인 끝에 1시간 만에 완전히 동이 났다. 반세기 넘게 여름마다 전 세계 관중들을 매료시킨 글래스턴베리의 비밀이 궁금해 지난해 11월 예매 전쟁에 참전했다. 당당히 티켓을 손에 넣고 반년을 기다린 끝에 글래스턴베리로 향했다. 지난 달 26일부터 4박 5일간 지구상 가장 뜨거웠던 글래스턴베리 축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상 최대의 낙(Rock)원의 초대다.
GlastoFest2024의 메인 무대에 선 버밍엄로열발레단의 공연 장면.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록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무용 등을 아우르며 반세기 넘게 매년 여름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영국의 작은 농장으로 끌어모은다. (c)Anna Barclay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 공연만 보다 온다면 절반도 즐기지 못한 것이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본 행사는 주말을 끼고 3일 간이지만 앞서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간 전야제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일본의 후지락페스티벌을 비롯해 전세계 음악 페스티벌에서 개최되는 전야제가 하루뿐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전야제에선 공식 공연이 하나도 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체 관객의 절반 정도가 수요일부터 글래스턴베리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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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에어로빅 점심엔 라틴댄스 올해 글래스턴베리의 메인 무대에 가장 먼저 오른 사람은 누구일까. 락 밴드? 아니면 팝 스타? 둘 다 틀렸다. 정답은 피트니스 코치다. 목요일 오전 10시 글래스턴베리의 메인무대 중 하나인 파크스테이지엔 유명 피트니스 코치 조 윅스가 올랐다. 그는 퀸의 ‘Don't stop me now’와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 등 노래에 맞춰 관객들과 제자리 뛰기 등을 함께 했다. 에어로빅과 비슷한 운동. 야외 페스티벌이 ‘결국은 체력전’이라는 걸 아는 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따라했다. 30분 간 수 백명의 관객들은 그의 구령에 맞춰 가볍게 숨이 찰 정도로 체조를 하고 사흘 간 이어질 공연들을 즐길 준비를 마쳤다.
Glastofest2024 (c)Anna Barclay
‘글라스토 라티노’라는 텐트에서는 공연 기간 중 살사댄스와 삼바댄스를 배우는 클라스가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번갈아가며 열렸다. 단상에 올라간 코치는한 번도 살사와 삼바를 춰 보지 않은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도록 스텝 밟는 순서 등을 천천히 알려준다. 라티노 텐트에선 오후 7시부터 카니발이 열리는데, 관객들은 라틴 음악에 맞춰 그날 배운 라틴 댄스를 맘껏 뽐냈다.
GlastoFest2024 (c)Rik Mav
글래스턴베리에선 새벽 다섯시까지도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의 유명 아티스트들이 공연하는 무대가 수십 곳이다. 무대 여럿을 돌아다니며 즐기다 보면 이튿날 컨디션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새벽까지의 음주 가무로 피로한 관객들이 향하는 곳이 있었으니, 행사 기간 동안 매일 오전 8시부터 문 여는 ‘힐링필드’ 구역이다. 여기선 요가 클라스가 열린다. '이효리 요가'로 널리 알려진 하타 요가를 비롯해 다양한 요가 클라스가 한 시간 단위로 열린다. 모처럼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지친 심신을 안정시키는 명상의 장소.
Glasto2024 (c) SK Lee
Glastofest2024 (c)Andrew Allcock
윤전기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

글래스턴베리에선 모래바닥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읽고 있는 신문은 글래스턴베리 행사 기간 동안만 운영하는 자체 신문사 ‘글래스턴베리 프리 프레스’가 찍어낸 것이다. 축제 기간 중 목요일 아침과 일요일 아침 딱 두 차례, 4페이지짜리 신문을 발행한다. 1957년에 만들어진 7t짜리 윤전기는 행사 기간 동안 볼 만한 공연과 관련 인터뷰 등이 적힌 기사를 바쁘게 찍어낸다. 인쇄소에 방문하면 신문이 인쇄되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
GlastoFest2024 (c) AndrewAllcock
Glastofest2024
매일 3만부 가량의 신문이 배부되는데, 오후 6시가 되기도 전에 모두 동난다. 신문을 통해 올해 축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을뿐만 아니라 훗날 글래스턴베리를 추억하는 굿즈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목요일판 신문에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개최자이자 낙농업자인 마이클 이비스의 단독 인터뷰,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앵커이자 아마추어 DJ인 로스 앳킨스의 이야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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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의 땅주인은 젖소였어!

글래스턴베리는 여의도 면적의 2배 크기(6㎢)의 목장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동안 500마리의 젖소들은 잠시 행사장 바깥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행사 기간 중에도 행사장에서 살았던 젖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행사장 곳곳에 그 소들이 직접 짠 우유를 파는 부스가 마련돼 있어서다. 이 우유는 초회 글래스턴베리부터 관객과 함께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유는 저지방으로 쿰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소 가벼운 맛을 띈다. 허기가 질 때마다 신선한 우유를 들이키며 다시 무대 앞으로 향했다. 글래스턴베리(영국)=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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