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운전자 '급발진' 주장 통할까…법원, 명시적 인정 드물어

민사소송 확정판결 없고 하급심서 일부 인정…형사재판은 법리 달라
9명이 숨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법적 판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각종 민·형사 소송에서 차량 급발진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이 주장이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차 사고를 둘러싼 민사 소송에서 법원이 자동차 결함을 인정하고 제조사에 책임을 물은 확정판결은 현재까지 한 건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020년 8월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인정한 첫 항소심 판결이 나와 현재 대법원에 상고심이 계류 중이다. 2018년 5월 BMW 차량을 몰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숨진 피해자의 자녀들이 BMW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이다.

2심 재판부는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차를 운행하던 상황에서 제조사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판단된다"며 위자료 4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차량이 사고 장소에서 300m 이전부터 다른 차량이 없는 갓길로 비상 경고등이 켜진 채 고속 주행했고, 운전자에게 과속 전력이나 건강상 문제도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앞서서도 일부 급발진이 인정된 판결이 있지만, 상급심에서 파기됐다.

1999년 5월 운전자 42명이 대우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을 맡은 인천지법은 일부 차량에 급발진 방지 장치인 '시프트록'(Shift Lock)이 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발진 사고를 제조사 책임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2심은 "시프트록으로 예방할 수 없는 급발진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등에 비춰 시프트록 미설치를 기계 설계상 결함으로 볼 순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한 형사사건에서는 급발진을 이유로 내세운 운전자들이 무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다만 범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의 특성상 운전자 형사책임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 대부분으로, 명시적으로 급발진을 인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법조인은 "운전자가 기소돼 급발진 주장을 이어가면 재판부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감정 등 절차를 거칠 것"이라며 "이때 고려되는 법리와 제조물 결함 책임을 묻는 민사 소송에서의 법리는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