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콘텐츠 시대, 소는 누가 키우나

김동윤 문화부장
2020년 2월 20일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 20여 명이 청와대에 초청받았다.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문화예술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졌다”고 감사를 표했다. 2022년 6월 12일엔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용산 대통령실을 찾았다. 두 사람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것이 우리의 국격이고, 국가발전의 잠재력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축하했다. 지금 와서 보니 한국 영화는 이때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용히 끝난 칸 국제영화제

지난 5월 폐막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봉착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영화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쟁 부문에 단 한 작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비경쟁 부문에서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만 상업영화 대작을 초청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포함됐을 뿐이다. ‘주목할 만한 시선’ ‘비평가주간’ 등 주요 비경쟁 부문에는 들어가지 못했다.칸에서의 초라한 성적표는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산업이 겪은 드라마틱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2020년 초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제작 현장과 극장은 올스톱됐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은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 고속성장했다. 상당수 영화제작 인력은 OTT 시리즈물 제작 시장으로 넘어갔다. 대중도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 결과 콘텐츠 소비 습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런 사실은 지표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국내 극장 매출은 1조2614억원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66%에 그쳤다. 관객 수도 1억2514만 명으로 2019년 대비 55%에 불과했다.

쪼그라드는 영화발전기금

이 같은 변화는 영화산업을 지탱하던 물질적 토대를 흔들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영화 관람객들에게 관람료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영화발전기금으로 부과해 왔다. 그런데 관람객이 급감하면서 영화발전기금도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540억원이었던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은 지난해 약 250억원으로 반 토막 났고, 올해도 250억~3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여파로 올해 영화진흥 관련 각종 예산은 줄줄이 삭감됐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영화 창·제작 지원 예산’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사업’ 등은 예산이 전년에 비해 반 토막 나거나 전액 삭감됐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 3월 정부가 준조세 성격의 각종 부담금을 일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영화계는 영화발전기금 축소가 아니라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부담금이 없어지더라도 별도의 방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콘텐츠를 국가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해 세계 4대 콘텐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정했다. 콘텐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침체는 방치하면서 콘텐츠산업은 키우겠다는 게 실현 가능할지 의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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