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제아무리 예측을 잘해도 판단은 인간의 몫 [서평]
입력
수정
AI 경제학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떠들썩하지만 기업 경영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사무직에선 챗GPT 등을 곧잘 쓴다. 그러나 공장을 가동하거나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영역에서는 AI 도입이 흔치 않다. “AI의 활용성이 과장됐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다.
어제이 애그러월 외 지음
천형석 옮김/에코리브로
384쪽|2만2000원
<AI 경제학>은 AI를 업무에 도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분석한 책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들 세 명이 함께 썼다. 기술 혁신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해온 이들은 AI의 본질은 ‘예측 기계’라고 본다. 인간의 많은 활동은 예측과 판단으로 나뉜다. 농부가 농작물을 재배할 때, 기업이 투자를 단행할 때, 의사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때 항상 예측과 판단이 이뤄진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에서 이동하는 평범한 활동조차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시간이 얼마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 무엇을 타고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예측은 쉽지 않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불확실성 또한 크다.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책은 설명한다. 예측이 쉬워지고 값싸진 것이다. 전문적인 분석가들이 달라붙어야 했던 예측을 AI의 도움을 받아 누구든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덕에 초보자도 몇십년 경력의 택시 운전사처럼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병을 진단할 수는 있다. 가능한 치료법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지 최종 결정은 의사가 내려야 한다. 병원이든 기업이든 어떤 영역에서든 AI의 예측을 토대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역할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저자들은 내다봤다. AI 시대에는 조직의 구성과 체계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중반 사이 산업의 에너지원이 증기에서 전기로 넘어갈 때를 예시로 든다. 공장 등에서 전기를 제대로 활용하는데 4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예측 기계로서 AI를 조직 내에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AI의 등장으로 예측이 쉬워지고, 예측과 판단의 분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은 흥미롭다. 다만 이것만이 AI의 본질인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새로운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구체성이 떨어지는 점도 아쉽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