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컨트리 전설들만 선다는 무대…韓 5인조 밴드가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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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위의 사람들청바지를 입고 벤조를 튕기는 서부의 카우보이. ‘컨트리 음악’은 우리에게 이런 이미지다. 미국에선 재즈와 함께 대중음악의 굵직한 기둥이자 전통음악의 한 축. 이민자들의 민속음악이 고루 혼합된 그야말로 미국적 장르인 이 음악에서는 농촌 백인들의 애환, 사랑 등 통속적이고 서민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한국의 트로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부터 부흥하기 시작해 록과 포크 등의 영향을 받으며 대중화됐다.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도 컨트리 색채가 강한 대표적인 가수다.
美서 더 유명한 컨트리공방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꿈꾸는
오프리 무대, 한국인 최초 올라
우리 말로 노래 부르니 뭉클해
스위프트가 썼던 대기실 사용
'Oh my God, I'm on the Opry'
벽에 적혀 있던 문구 기억 남아
카우보이 떠오르는 컨트리 음악
미국에선 재즈와 함께 양대기둥
우린 그중 블루그래스 장르 매료
‘미국 트로트’인 컨트리 장르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들이 있다. 지난달 22일 한국의 5인조 밴드 ‘컨트리공방’은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무대에 데뷔했다. 그랜드 올 오프리는 100여 년 역사를 가진 무대다. 조니 캐시, 돌리 파튼, 앨리슨 크라우스, 론다 빈센트 등 컨트리 역사를 써온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거쳐 갔다. 컨트리의 하위 장르인 블루그래스 음악을 선보여온 컨트리공방은 이 무대에서 돌리 파튼의 ‘졸린(Jolene)’과 이들의 2집 타이틀곡 ‘버섯꾼’을 들려주며 현장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무대를 마친 컨트리공방 멤버들을 서면으로 만났다.▷컨트리는 테일러 스위프트 때문에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국내에선 생소한 장르다. 블루그래스는 더 그렇다.
“1920년대 북아메리카 남쪽에 이주해 온 여러 유럽 이민자들이 다양한 악기를 가져왔어요. 여러 인종과 민속음악이 상호작용하면서 지금의 컨트리라는 독특한 음악이 만들어졌죠. 이 중 블루그래스는 서부의 산악 음악을 어쿠스틱 악기로 현대화한 음악입니다. 블루그래스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빌 먼로의 고향 켄터키주에서 자라는 풀 이름을 따서 지었죠. 그의 밴드 이름이기도 해서 이 장르를 아예 블루그래스라고 부르게 됐어요. 블루그래스는 컨트리 음악에서도 본질에 제일 가까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활력과 애수감이 교차하는 매력이 있죠.”
▷컨트리에 매료된 이유와 과정이 궁금하다.“저희 모두 조금씩 다른 이유로 출발했어요. 원선재(기타)는 부모님이 블루그래스 음악의 빅팬이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악기를 접하며 블루그래스 영재로 자랐습니다(웃음). 부모님과 함께 가족 밴드를 했는데 블루그래스에서 매우 흔한 일이죠. 윤종수(피들)는 미국 최고의 피들러 마크 오코너를 좋아해 이 장르에도 매료됐어요. 송기하(베이스)는 생동감 있는 어쿠스틱 사운드에 끌렸고, 김예빈(보컬)은 블루그래스 노래 가사가 지니고 있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에 공감하면서 시작했죠. 장현호(벤조)는 벤조라는 악기에 먼저 매료됐고, 블루그래스의 꽃이 벤조라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컨트리공방은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블루그래스 협회(IBMA)에서 수여하는 국제 밴드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컨트리공방은 그 자격으로 같은 해 9월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2023 월드 오브 블루그래스’ 무대에서 공연했다. 이는 밴드에 재정 지원을 하고 공연 기회 등을 주는 프로그램이다.▷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컨트리공방이라는 이름은 꽤나 한국적이다.“공방이 장인의 작업 공간을 의미하잖아요. 한 공간에 함께 모여서 컨트리 음악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지었어요.”
▷지금의 구성원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
“대학 동기인 장현호와 김예빈이 2013년 팀을 만들었어요. 곧이어 학교 후배인 송기하를 영입했고요. 컨트리공방 초기에는 드럼, 피아노 등이 있어 지금보다는 팝에 가까운 악기 구성이었죠. 하지만 블루그래스 음악에 비중을 두면서 좀 더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위한 구성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김예빈은 만돌린을, 송기하는 일렉베이스 대신 콘트라베이스를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아이리시 음악을 하던 윤종수를 한 지역 축제에서 만났고, 비슷한 시기에 블루그래스 기타리스트 원선재도 알게 됐어요. 보자마자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오리지널 멤버와 새로운 멤버들이 만나 현재의 컨트리공방이 됐습니다.”▷그랜드 올 오프리 무대에 섰다. 팝 음악의 코첼라 페스티벌 같은 전설적인 무대라고 들었다. 무대를 마친 소감은?
“오프리 무대에서 한국어 노래를 부르니 뭉클하고 벅찼어요. 오프리에 데뷔하는 밴드에 가장 첫 번째 대기실을 배정해 주는 전통이 있는데요, 그 방 벽에는 오프리에 데뷔한 수많은 레전드 뮤지션의 사진과 소감이 적혀 있었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위프트의 “Oh, my God, I’m on the Opry!”였어요. 컨트리공방 초기에 정말 많이 영상을 보면서 공부했던 ‘블루그래스 퀸’ 론다 빈센트도 만나게 됐어요. 론다가 자신의 대기실에 저희를 초대해 몇 곡을 같이 연주하기도 했죠. 장현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론다 빈센트는 40년 넘게 블루그래스 음악을 해온 가수이자 악기 연주자로, 그래미상 후보에 여덟 번 이상 올랐으며 2017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블루그래스 앨범 부문을 수상한 아티스트다.
▷컨트리는 국내에선 마이너 장르다. 어렵거나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에서 월드 뮤직을 하는 음악가라면 항상 하는 고민입니다. 어떻게 한국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해요. 저희가 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면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가 궁금하다.“우선 여름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그레이폭스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을 합니다. ROMP 페스티벌, 프랑크포트 페스티벌 등 각종 페스티벌과 미국 투어 공연을 할 것 같아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