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이 살길이다

혁신엔 인재 끌어들이기가 중요
폐쇄적인 韓 사회 쇄신 시급해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前 중소기업청장
세계는 지금 기술 패권 시대다.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인공지능(AI)을 위시한 기술 혁신이 가히 빛의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이제 아무리 큰 국가나 기업도 혼자서는 이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협력 기반의 기술 혁신에 온 세계가 매진하는 이유다. 세계 양대 기술 전시회인 미국 CES와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올해 핵심 키워드가 ‘지속 가능성 및 디지털화’와 함께 ‘협력’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도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방문한 이후 글로벌 기술 협력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협력 기반의 기술 혁신을 잘하는 나라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기술을 선도하는 세계적 연구소, 대학, 기업을 찾아 기술 협력을 추진하는 ‘외향적(아웃바운드)’ 협력도 중요하나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핵심 기술일수록 남에게 쉽게 내놓거나 보여줄 리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과정에서 ‘내향적(인바운드)’, 즉 국내로 끌어들이는 글로벌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국이 된 것도 유럽, 아시아 등 세계 인재를 이민자로 받아들인 결과다. 세계 과학기술 인재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 인재들과 마음껏 기술 협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적 쇄신이 시급하다. 우리 정부와 기업, 대학, 연구소 모두 한국인 일색이다. 다양성은 혁신의 필수 요건이다. 한국은 인종, 남녀, 노소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성이 부족하고 배타적인 점이 혁신의 걸림돌이라는 외부 평가에 유념해야 한다. 순혈주의를 타파해 혁신적 이민정책 등 해외 인재 유치에 국가적으로 나설 때다.

해외 인재 유치와 병행해 해외 연구소 유치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에 따라 첨단기술 분야의 미·중 협력이 중단되면서 한국으로의 연구소 이전 및 유치 기회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협력 친화적 혁신 생태계 구축으로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국인 싱가포르와 일본의 적극적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싱가포르는 세계의 혁신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내향적’ 글로벌 협력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정부 주도로 세계적 석학을 교수로 채용하는 등 강력한 글로벌 인재 및 연구기관 유치를 장기간 지속해서 추진해왔다. 그 결과로 싱가포르국립대(NUS)와 난양공대(NTU)가 아시아 최고 대학으로 발전하고 GSK, 머크, 바스프 등 바이오제약사와 롤스로이스, P&W 등 항공기 엔진 기업, SAP 등 소프트웨어 기업, 도레이 등 소재 기업을 망라한 세계적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협력 기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정부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의 동남아시아 독점 유치에 나선 것도 단지 관광 수입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언어, 생활, 문화, 제도 면에서 세계 최고의 글로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싱가포르 정부의 치밀한 ‘글로벌 허브’ 정책의 한 사례다.외국인에게 배타적이던 일본도 2019년 이민청 신설과 함께 해외 인재 유치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최근 대학 및 연구소의 국제화와 대만 TSMC, 삼성전자, 독일 보쉬,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 연구소 유치에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에 세계가 뛰고 있다. 우리도 민관이 합심해 국가적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머뭇거리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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