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밟았지만"…시청역 역주행 운전자, 재차 '급발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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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피의자 조사경찰이 4일 오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운전자 차모(68)씨를 상대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차씨는 차량이 급발진해 사고가 났다고 재차 주장했다.
체포영장은 기각
경찰 "구속영장 신청 여부 검토"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2시 45분께 차씨가 입원해있는 서울대병원을 찾아 첫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변호사 입회하에 경찰 교통조사관 총 4명이 입원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조사했다.차씨는 사고 당시 갈비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간 경찰은 차씨가 진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로 보고 근거리 신변 보호만 해왔다. 차씨는 사고 직후 줄곧 '급발진'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조사에서도 그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차량 속도가 갑자기 빨라져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경찰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피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조사했고 피의자 및 변호인과 협의해 추후 후속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차씨의 상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첫 조사인 만큼 본격적인 신문을 하기보다는 사고 전후 상황에 대한 차씨의 진술을 듣는 데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이뤄질 추가 조사에서는 급발진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평소 차량 운행 시에는 이상이 없었는지, 왜 역주행 도로로 들어섰는지 등을 심문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사고 직전 호텔 주차장에서 나올 때부터 속도를 낸 사실이 확인된 만큼 당시 가속한 이유와 돌발상황 여부, 차에 타기 전 주변 상황에 대해서도 물을 것으로 전망된다. 역주행하면서 인도로 방향을 튼 이유와 사고를 피하기 위한 조치를 했는지 등도 조사 대상이다.앞서 경찰은 차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피의자가) 출석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거나 체포의 필요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체포영장이 기각됐어도 병원에 있고 신변 보호가 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수사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구속영장 신청 여부도 계속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피의자 조사에 앞서 경찰은 사고 당시 차씨 옆에 타고 있던 아내 A씨를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1차 조사했다. A씨 역시 차씨와 마찬가지로 '브레이크, 제동장치가 안 들은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함께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현장검증도 진행했다. 차씨 차량이 역주행을 시작한 시청역 인근 호텔 지하 주차장부터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은 시청역 교차로까지 3D스캐너 등 장비를 동원해 도로 실측과 시뮬레이션 작업이 이뤄졌다.경찰 초동 조사 결과 급발진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이 일부 드러났다. 차씨가 몰던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한 경찰은 이를 토대로 차씨가 사고 직전 가속페달(액셀)을 강하게 밟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차량이 역주행할 때 보조브레이크등도 켜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 전 구간에서 차량의 스키드마크(Skid mark)도 발견되지 않았다. 스키드마크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타이어가 지면에 마찰하면서 생기는 자국이다. 차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거나 약하게 밟아 급제동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경찰은 차량 및 기계 결함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과수 등의 정밀 분석 결과를 받아본 뒤 급발진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으로 관측된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