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은 말한다… “회사가 잘 안된다면 전적으로 경영인 책임”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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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나모리 가즈오 원점을 말하다“여러분은 경영인입니다. 경영은 최고경영자의 사고방식과 의지로 결정됩니다. 따라서 만약 여러분의 회사 경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면, 부사장의 잘못도 아니고 전무나 중역의 잘못도 아닙니다. 당연히 직원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매우 실례되는 말씀 같지만 그것은 단 하나, 최고경영자인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여러분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양준호 옮김/21세기북스
704쪽|3만9800원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말이라고 해도, 이 말을 듣고 가만있을 최고경영자(CEO)는 드물 것이다. 이들은 항변한다. 좋은 인재가 없다,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부족하다, 때가 안 좋았다 등등.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나모리 당신이 교세라와 KDDI를 창업해 성공시켰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기업도 있는 법이라고. 실제로 이나모리는 2010년 77세의 나이로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일본항공(JAL) 회장에 취임했다. 파산 보호에 들어간 JAL의 재건을 맡게 됐다. 항공업은 문외한이었다. 주변에서도 “이제 연배가 있으니 맡지 않는 게 좋겠다”며 말렸다. 이나모리는 그가 가진 2개의 무기를 믿었다. 바로 ‘철학’과 ‘아메바 경영’(조직을 소집단으로 나눈 뒤 책임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경영 방식)’이었다.
그는 JAL 임직원을 상대로 강연하고, 현장을 찾아 소통했다. ‘왜 일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불어넣었다. “일본항공이 사랑을 받을지 그렇지 않을지 여부는 여러분의 태도와 언행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국적항공사라는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하게 고객을 대했던 JAL은 그렇게 조금씩 변했고,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경영, 이나모리 가즈오 원점을 말하다>는 2022년 90세의 나이로 타계한 이나모리의 경영 철학 가운데 핵심만 모은 책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경영 강연 선집>을 낸 적 있는 일본 다이아몬드 출판사가 기획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이나모리 강연 중 핵심적인 강연만 추린, ‘선집 중의 선집’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2000년대 리먼 쇼크를 겪으면서도 위기를 극복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저성장 시대 경영의 신’이라 불린 그의 지혜가 담겼다. 위대한 경영자도 시작은 회사원이었다. 가고시마대에서 응용화학을 공부한 그는 교토의 한 회사에 취직해 연구개발 부서에서 일했다. 상사와 말다툼을 한 것을 계기로 1959년 27세에 갑작스럽게 교세라를 창업했다.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세라믹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경영의 ‘경’자도 몰랐던 그는 무엇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 회사를 경영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저는 경영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배우거나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국, 경영의 모든 어려움은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덕목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는 경영의 원점은 결국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것이 명확했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어 같은 방향을 향해 힘차게 가는 것, 거래 상대방을 감동하게 할 만큼 철저히 일을 해내는 것,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좋은 동기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 등이 그랬다. 그가 1984년 통신회사인 다이니덴덴(KDDI의 전신)을 창업한 것도 단순히 사세 확장이나 신사업 진출이 목적이 아니었다. NTT 독점을 깨고 질 좋고 저렴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무언가를 할 때 ‘동기가 선한지, 사심은 없는지’ 경영자는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도 책에 담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연구개발보다 회사가 갖고 있는 경쟁력을 더 높이는 ‘익숙한 연구개발’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격 결정은 영업 부서에 맡겨 둬서는 안 되는 CEO의 핵심 업무라고 강조했다. 타사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공급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지속가능하려면 사내에서 기술을 담당하는 이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언제적 이나모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엔 항상 낭만이 있었다. 돈만 보고 사업에 뛰어든 사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컨설팅 업체의 말을 듣고 회사의 방향을 정한 기업도 성과가 좋지 못했다. 위대한 기업 뒤엔 훌륭한 경영자가 있었고, 이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과 나름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지금 경영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경영 전략이 아니라 철학은 아닌지 책은 묻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