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스·전기요금 올리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이 다음달 1일부터 6.8% 인상된다. 지난해 5월 이후 15개월 만의 인상이다. 그나마 여름철이 연중 난방용 에너지 수요가 가장 적어 국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기라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그동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으로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시세가 급등했지만, 국내 가스요금은 원가 반영률이 80% 수준에 그쳤다. 팔면 팔수록 오히려 손해라는 얘기다. 그 결과로 한국가스공사의 사실상 손실인 미수금이 13조원 넘게 쌓였다.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이 나서 “현재 미수금 규모는 전 직원이 30년간 무보수로 일해도 회수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읍소했을 정도다.

이번 인상으로 미수금 증가에는 일단 제동이 걸리겠지만 ‘역마진’ 구조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가스공사 총부채는 지난 3월 말 기준 46조9000억원에 이른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5월, 산업용은 지난해 11월 이후 동결해온 한국전력도 사정은 비슷하다. 두 공기업의 부채는 250조원 규모로 하루 이자 비용만 170억원에 달한다. 이런 부실은 인공지능(AI), 반도체산업 등에 필요한 전력망 확충과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소 배관 투자마저 위축시켜 국가 산업 경쟁력은 물론 에너지 안보까지 위협할 지경이다.그 배경에 ‘요금의 정치화’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고물가 시대에 정부가 전기·가스요금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낮은 에너지 요금은 현재를 위해 국가 미래를 희생하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포퓰리즘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올해는 폭염으로 인한 냉방 수요와 AI발 전력 수요가 겹치면서 천연가스 가격 폭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 매번 여론을 살펴 요금을 ‘찔끔 인상’하는 식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정치가 좌우하는 기형적 요금 결정 구조를 바꿔 원가와 수요에 연동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전력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 강화’는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 중 하나다. 국가 에너지 생태계가 무너지기 전에 서둘러 시장 기반 요금체계 확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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