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터질게 터졌다…"예고된 참사" 난리난 한우 농가

"한우값 폭락은 예고된 참사"

공급과잉 경고 무시하더니
도매가격 3년 새 36% 급락
한우 도매가격이 3년 새 36%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감소도 영향을 미쳤지만 2019년부터 제기된 공급 과잉 경보를 무시한 채 한우 농가가 앞다퉈 사육 두수를 늘리다가 벌어진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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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마지막 주 기준 한우(1+ 등급) 도매가격은 ㎏당 1만5387원으로 집계됐다. 한우 도매가격은 2021년(2만4165원) 정점을 찍고 2022년 2만1525원, 2023년 1만7275원으로 내려가더니 올해 1만5387원까지 떨어졌다. 3년 새 36.3% 급락한 것이다.한우 사육 두수가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5년께부터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할수록 한우처럼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축산물은 수요와 생산이 동시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내 한우 사육 두수가 2019년 307만8000마리로 처음 3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부터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등이 “한우 사육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경고해 정부가 한우 감축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한우 수요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집밥 수요가 늘고 전 국민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이 투입되는 등 돈이 풀리면서 소비가 증가한 것이다. 한우 가격이 뛰자 농가도 계속 사육 두수를 늘렸고 이때 태어난 송아지들이 최근 한우 공급과잉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우 사육 두수는 2020년 322만7000마리, 2021년 341만5000마리, 2022년 355만7000마리, 작년 350만1000마리로 늘었다.

재난지원금 뿌리자 사육 늘린 농가…'소값 폭락' 부메랑

2012년 한우 도매가격 급락에 따른 ‘소값 파동’ 사태 후 한우업계에 공급 과잉 경보가 또다시 울린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해인 2019년 6월이다. 당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축산관측보에서 “도매가격이 조금씩 오르면서 한우 사육 규모도 같이 늘어났다”며 “신중한 송아지 입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년 주기로 찾아온 소값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농림축산식품부는 각 농가에 한우 감축을 독려하는 등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듬해 코로나19 사태가 찾아온 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4인 가구 기준) 나눠준 재난지원금은 이런 노력을 금세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올해 한우 농가를 직격한 소값 파동의 시작이었다.

◆재난지원금이 초래한 시장 교란

5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직전 해인 2019년 307만8000마리였던 한우 사육 두수는 2020년 322만7000마리, 2021년 341만5000마리, 2022년 355만7000마리, 지난해 350만1000마리로 늘었다. 한우의 임신부터 도축까지 약 3년4개월(40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 당시 태어난 송아지가 지금 도축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해외여행과 대면 접촉이 막힌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받은 시민들이 평소 비싸서 구입하기 어렵던 한우를 사들이며 수요가 몰리자 가격이 치솟았다. 정부도 소비 진작을 앞세워 소비를 부추겼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국거리를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뭉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0년 4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 전 국민을 대상으로 12조2000억원을 지원했다.농식품부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당시 분기별 한우(거세우) ㎏당 도매가격은 △1분기 2만414원 △2분기 2만1301원 △3분기 2만1956원 △4분기 2만988원을 기록했다. 당시 한우 가격은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잇따라 갈아치웠다.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치솟는 ‘수급 불균형’이 빚어진 것이다. 농가들은 이익이 늘자 한우 사육 규모를 늘리기 시작했다.

◆포퓰리즘 법안 내세운 야당

정부도 한우 공급 과잉을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급 과잉을 의식한 농식품부는 2020년부터 농가가 암소를 도축할 때마다 마리당 약 20만원을 지급하고, 차후 우수한 수소 정액을 받는 데 우선권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한우 수급 관리를 요청했지만 재난지원금이 초래한 시장 교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우 가격은 올해 들어 폭락했다. KREI에 따르면 지난 6월 마지막 주 기준 한우(1+ 등급) 도매가격은 ㎏당 1만5387원으로, 2021년(2만4165원) 대비 3년 새 36.3% 급락했다.한우업계는 사료값이 치솟고 외국산 소고기 수입량도 늘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요동치면서 배합사료 가격은 지난해 11월 기준 ㎏당 614원까지 치솟았다. 2021년 평균치(462원) 대비 32.9% 올랐다. 더욱이 2022년 7월부터 수입 소고기 10만t이 무관세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예고된 한우 가격 폭락이 ‘한우법’ 논쟁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우 농가를 특별 지원하는 한우법 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14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는 “물가가 다 오르는데 해괴하게 쌀값과 한우값만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우법 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폐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별도의 한우법을 제정하는 대신 한우 단체의 주장을 반영한 축산법 개정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한우 농가의 소득을 근본적으로 안정시키려면 한우법 제정이라는 ‘땜질식 처방’ 대신 농가의 자율적인 수급 관리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한국의 한우와 비슷한 ‘화우’의 사육 규모를 일정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광식/박상용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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