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하던 삼성인데…"상당히 고통스러울 것" 무슨 일이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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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메모리 1위 삼성의 고군분투"삼성전자 사람들이 과거에 못 해본 경험을 하고 있다.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젠슨 황 'HBM3E 납품' 승인은 언제 나오나
SK하이닉스, TSMC가 짜놓은 판
추격자 위치에서 경쟁 어려움 커
"2025년 HBM4부터는 삼성이 주도"
'턴키' 가능한 강점 발휘 낙관론
최근 만난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전문가 A씨가 한 말이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나온 얘기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3E(5세대 HBM) 8단과 12단 제품을 납품을 시도 중이다. 공식 납품은 현재까지 성사되지 않았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E 8단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30년 1등 삼성전자, 2등의 어려움 처음 겪어
A씨는 삼성전자가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2등을 안 해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삼성전자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93년 이후 30년 넘게 세계 메모리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1위를 기록했다.대부분의 신제품은 삼성전자가 가장 먼저 만들었다. 보통의 D램은 중앙처리장치(CPU)와 함께 작동한다. D램이 전 세계 시장에 팔리기 전엔 CPU 세계 1위 미국 인텔의 인증이 필요하다. 이 과정도 삼성전자가 1번이었다. 후발 주자들은 삼성과 인텔, 메모리와 CPU의 강자가 만들어 놓은 틀을 맞추기에 급급했다. 한 메모리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경쟁사에 우리 제품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했다.최근 HBM 시장은 다르다. 항상 인증을 주도했던 삼성전자가 뒤따라가는 상황이다. AI 가속기 세계 1위 업체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해 애 쓰고 있는 과정이 그렇다. AI 가속기는 데이터 학습·추론에 쓰이는 반도체 패키지로 HBM과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첨단패키징(여러 칩을 모아 한 칩처러 작동하게 하는 공정)을 통해 제작한다.
구형 제품으로 같은 성능 내야
현재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GPU는 엔비디아가 설계, 대만 TSMC가 생산한다. HBM은 SK하이닉스가 납품한다. HBM과 GPU의 패키징은 TSMC 몫이다. TSMC가 엔비디아의 GPU를 생산하고, SK하이닉스의 HBM을 받아 최첨단 패키징을 거쳐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것이다.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성사하기 위해선 엔비디아의 구미에 맞춰 SK하이닉스와 TSMC가 짜놓은 판에 맞춰서 들어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로 평가된다.우선 엔비디아가 원하는 성능에 맞춰 SK하이닉스 못지않은 HBM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HBM3E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제품은 재료부터 양산 기술까지 차이가 크다. 삼성전자는 4세대 10나노(nm·1nm=10억분의 1m) D램(D1A)을 HBM3E의 재료로 사용한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10나노(D1B) D램을 쓴다.
각 사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지만 시장에선 SK하이닉스 제품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의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는 "한 세대 앞 D램으로 최신 D램만큼 성능을 내려면 그만큼 부담이 가기 마련"이라며 "삼성 HBM의 발열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사 TSMC 눈치까지 봐야
두 번째는 HBM을 받아 최첨단패키징을 하는 TSMC와의 궁합도 맞춰야 한다. TSMC 입장에선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SK하이닉스의 제품 규격, 성능대로 삼성전자가 맞춰오는 게 편하다. 엔비디아의 위임을 받아 최첨단패키징을 담당하는 TSMC에선 삼성전자에 "SK하이닉스와 같게 맞춰오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다른 공정에서 HBM을 만드는 삼성전자가 TSMC의 구미에 맞게 SK하이닉스와 유사하게 제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TSMC가 파운드리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납품을 방해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TSMC가 만들어 놓은 판에서 까다로운 엔비디아의 품질 요건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엔비디아를 뚫기 위해 1년 넘게 고군분투 중인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란 평가도 나온다.삼성전자가 올 1분기 'HBM3E 12단 최초 개발'을 발표하며 엔비디아에 '가장 먼저 납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도 'HBM3E 12단'과 관련해선 판을 먼저 만들겠다는 뜻이 녹아있다는 분석도 있다.
증권가에선 "HBM3E 8단 올 3분기 중 납품 가능성"
삼성전자도 최근 HBM 조직을 재정비하고 심기일전하고 있다. 올 초부터 태스크포스(TF) 형태로 흩어져 있던 HBM 담당 조직을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 산하 'HBM개발팀'으로 모아 공식 출범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내년 양산 예정인 6세대 HBM인 'HBM4'와 관련해선 "주도권을 우리가 갖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HBM 생산, 설계, 파운드리, 최첨단 패키징까지 다 할 수 있는 삼성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것이다.당초 2분기 중 HBM3E 12단을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게 삼성전자의 목표였다. 목표 달성 시기는 밀렸지만, 최근 삼성 안팎에선 긍정론이 확산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르면 8월 HBM3E 8단 품질 인증, 4분기 중 HBM3E 12단 품질 인증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사장급 고위급 인사가 "엔비디아 납품 관련 잘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하지만 불확실성 역시 크다. 키는 엔비디아가 쥐고 있어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삼성전자의 HBM3E 제품에 'APPROVED(승인)'이라고 사인하는 등 여러 차례 삼성전자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현재까지 승인 소식은 없는 상황이다.최근 삼성 안팎에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젠슨 황이 SK하이닉스의 HBM 납품 단가를 깎기 위해 삼성전자를 HBM 공급사로 지정할 것 같은 액션만 일부러 여러 번 취했다는 얘기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