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근무시간에 매일 5시간씩 몰래 대학 다닌 직원 결국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수정
자동차 판매 영업사원이 장기간 하루 평균 5시간 40분가량 영업 활동 대신 대학교 건물에 머무른 사실이 밝혀져 해고됐다. 하지만 이 직원은 "포괄적인 영업활동"이라며 부당해고 소송을 냈다가 2심서도 패소했다. 최근 현대차 역시 영업사원들의 근태 관리를 두고 소송을 진행하는 등 외근직 근로자들을 둘러싼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외근이 많은 영업직 근로자가 업무 특성을 악용할 경우 근태 관리가 쉽지 않으므로 이를 관리할 체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회사의 현장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A는 2021년 1월 25일부터 3월 22일까지 당직근무나 공휴일을 제외한 총 25일의 조사 대상 일수 중 19일에 걸쳐 한 대학의 경영대학동 건물에서 1일 평균 5시간 44분 체류한 사실이 밝혀졌다.
A의 일과는 일정했다. 자신이 일하는 지점에 8시 반 출근해 조회에 참석한 후 대학으로 이동해 정기 등록 주차를 하고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건물로 들어간 후 오후 4시 전후로 건물을 떠났다. 이후 지점으로 돌아가 5시 반 저녁 조회에 참석하고 퇴근했다.조사 결과 A는 이 대학교에서 2005년경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2018년 2월경에는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해당 대학 부설기관인 연구소의 연구위원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는 이런 점을 근거로 A가 근무시간 중 영업활동 외의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고 ‘직무 외 행위, 근무태만, 직무유기’를 징계사유로 ‘권고사직’을 통보했지만, A가 사직원을 제출하지 않자 같은 해 7월 A를 해고했다.
A는 부산지방노동위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중앙노동위원회도 재심을 기각하자 중노위를 상대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지난 4월 A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에 이어 중노위와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다.재판과정에서 A는 "잠재 고객인 대학 임직원과 네트워크를 쌓고 영업망 구축 활동을 하면서 고객이 판매 상담을 요구하면 대학교 밖으로 나가는 등 판촉 활동을 성실히 수행했다"며 "대학교 내 체류 등은 전체적으로 기아차 소속 판매사원의 영업활동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차량 판매실적이 전국 평균이나 소속 지점 기준으로 모두 평균 이하인 점을 꼬집었다. 재판부는 "대학건물은 교수, 학생 등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차량 판촉활동 등 영업활동이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며 "(학위 등을 취득하면서) 이미 오랜 기간 해당 대학에서 충분히 네트워크를 쌓았음에도 그 외 영업장소를 탐색하지 않고 근무시간 중 계속 대학에 머물렀다는 것은 영업활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지금 맡은) 노조 위원회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자료수집 등을 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제출 못하고 있다"며 되레 "대학 건물에는 A가 소속된 연구소가 위치해 개인적인 연구·학문 활동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일축했다.해고가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의무는 근로제공임에도 비위행위가 장기간 이뤄졌다"며 해고가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가 판매사원들에 대해 근무활동 중 사적 활동 금지, 철저한 근태 관리를 강조해왔음에도 판매사원에 대한 관리·감독이 용이하지 않은 점을 이용해 비위행위를 저질렀다"며 "근무시간 중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리라는 사용자의 신뢰를 져버렸고, 이로 인해 다른 직원들의 사기를 저해했고 기업질서를 크게 훼손했다"라고 질타했다.
해당 사건은 A가 상고하면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대차 역시 영업직 근로자들의 근태 관리를 두고 골머리를 앓아 왔다. 지난 2020년 초 약 3개월간 당직이나 주말·공휴일을 제외한 근무일 56일 중 51일 동안 근무 시간 중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하루 평균 2시간 38분 정도를 머문 직원을 해고했다가 부당해고 소송전을 벌인 바 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승리(심리불속행 기각)로 종료했다.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는 A에 매년 8000만 원 이상의 적잖은 임금을 지급했으며, 이는 성실한 영업 활동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이 회사 단체협약에 따르면 판매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영업직 사원을 징계·전보하는 게 불가능한데, 이를 이용해 영업활동을 태만히 한다면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기사 연봉 8700만원 받고…매일 3시간씩 집 간 현대차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이처럼 판매영업직 근로자들이 근태 관리가 어려운 점을 악용한 사례가 연달아 드러나면서 '모럴해저드'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회사와 노조로 부터 두터운 보호를 받으며 성과와 관계 없이 상당한 수준의 기본급이 보장되는 대기업 정규직 영업직군의 경우 회사에 큰 불이익을 줄수 있음에도 되레 적발과 징계가 쉽지 않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영업직 근로자의 근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라며 "이를 이용한 근로미제공은 근로관계의 근간인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무겁게 볼 수밖다"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노동법 전문가들은 외근이 많은 영업직 근로자가 업무 특성을 악용할 경우 근태 관리가 쉽지 않으므로 이를 관리할 체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사 학위 딴 대학에 매일 '출근 도장'...적발되자 "전체적으로 영업활동"
1994년 기아에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A씨는 노조 관계자로서도 활동해 왔다. 그런데 회사는 A가 영업시간에 영업과 관계없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부 제보를 받았다.회사의 현장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A는 2021년 1월 25일부터 3월 22일까지 당직근무나 공휴일을 제외한 총 25일의 조사 대상 일수 중 19일에 걸쳐 한 대학의 경영대학동 건물에서 1일 평균 5시간 44분 체류한 사실이 밝혀졌다.
A의 일과는 일정했다. 자신이 일하는 지점에 8시 반 출근해 조회에 참석한 후 대학으로 이동해 정기 등록 주차를 하고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건물로 들어간 후 오후 4시 전후로 건물을 떠났다. 이후 지점으로 돌아가 5시 반 저녁 조회에 참석하고 퇴근했다.조사 결과 A는 이 대학교에서 2005년경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2018년 2월경에는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해당 대학 부설기관인 연구소의 연구위원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는 이런 점을 근거로 A가 근무시간 중 영업활동 외의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고 ‘직무 외 행위, 근무태만, 직무유기’를 징계사유로 ‘권고사직’을 통보했지만, A가 사직원을 제출하지 않자 같은 해 7월 A를 해고했다.
A는 부산지방노동위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중앙노동위원회도 재심을 기각하자 중노위를 상대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지난 4월 A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에 이어 중노위와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다.재판과정에서 A는 "잠재 고객인 대학 임직원과 네트워크를 쌓고 영업망 구축 활동을 하면서 고객이 판매 상담을 요구하면 대학교 밖으로 나가는 등 판촉 활동을 성실히 수행했다"며 "대학교 내 체류 등은 전체적으로 기아차 소속 판매사원의 영업활동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차량 판매실적이 전국 평균이나 소속 지점 기준으로 모두 평균 이하인 점을 꼬집었다. 재판부는 "대학건물은 교수, 학생 등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차량 판촉활동 등 영업활동이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며 "(학위 등을 취득하면서) 이미 오랜 기간 해당 대학에서 충분히 네트워크를 쌓았음에도 그 외 영업장소를 탐색하지 않고 근무시간 중 계속 대학에 머물렀다는 것은 영업활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지금 맡은) 노조 위원회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자료수집 등을 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제출 못하고 있다"며 되레 "대학 건물에는 A가 소속된 연구소가 위치해 개인적인 연구·학문 활동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일축했다.해고가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의무는 근로제공임에도 비위행위가 장기간 이뤄졌다"며 해고가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가 판매사원들에 대해 근무활동 중 사적 활동 금지, 철저한 근태 관리를 강조해왔음에도 판매사원에 대한 관리·감독이 용이하지 않은 점을 이용해 비위행위를 저질렀다"며 "근무시간 중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리라는 사용자의 신뢰를 져버렸고, 이로 인해 다른 직원들의 사기를 저해했고 기업질서를 크게 훼손했다"라고 질타했다.
해당 사건은 A가 상고하면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외근·영업직 근태 관리 '전쟁'
현대차 역시 영업직 근로자들의 근태 관리를 두고 골머리를 앓아 왔다. 지난 2020년 초 약 3개월간 당직이나 주말·공휴일을 제외한 근무일 56일 중 51일 동안 근무 시간 중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하루 평균 2시간 38분 정도를 머문 직원을 해고했다가 부당해고 소송전을 벌인 바 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승리(심리불속행 기각)로 종료했다.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는 A에 매년 8000만 원 이상의 적잖은 임금을 지급했으며, 이는 성실한 영업 활동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이 회사 단체협약에 따르면 판매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영업직 사원을 징계·전보하는 게 불가능한데, 이를 이용해 영업활동을 태만히 한다면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기사 연봉 8700만원 받고…매일 3시간씩 집 간 현대차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이처럼 판매영업직 근로자들이 근태 관리가 어려운 점을 악용한 사례가 연달아 드러나면서 '모럴해저드'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회사와 노조로 부터 두터운 보호를 받으며 성과와 관계 없이 상당한 수준의 기본급이 보장되는 대기업 정규직 영업직군의 경우 회사에 큰 불이익을 줄수 있음에도 되레 적발과 징계가 쉽지 않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영업직 근로자의 근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라며 "이를 이용한 근로미제공은 근로관계의 근간인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무겁게 볼 수밖다"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