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 지지 못받는 'ESG 행동주의'

사회·지배구조 안건 통과율 저조
ESG 중에서 'E' 중심 투자 재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를 담은 주주제안이 실제 주주총회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사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기업 데이터 업체 ISS코퍼레이트에 따르면 상반기 주주총회 시즌 러셀3000(시가총액 상위 3000개) 기업의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주주제안의 평균 지지율은 각각 21%와 1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억지로 묶인 ‘ESG’가 아니라 탈탄소 등 ‘E’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투자가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올해 3000개 기업 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 등이 촉구한 주주제안 중 과반수를 얻은 사례는 두 건에 불과했다. 두 개의 제안 모두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도록 기업에 요구하는 내용이다. 어도비, 벅셔해서웨이, 일라이릴리 등의 주총에서 ESG 안건을 둘러싸고 치열한 격전이 예상됐지만, 행동주의 펀드 지지율은 작년보다 훨씬 낮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20년대 초반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엑슨모빌은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21년 엑슨모빌 지분 0.02%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원은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미흡하다’고 주장하며 주총에서 이사회 멤버 3명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자산운용사 블랙록 등은 엔진넘버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최근 엑슨모빌 경영진이 기후 행동주의를 향해 소송전을 펼치자 이번엔 뱅가드 등 다른 주주들이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대형 자산운용사는 최근 ESG 안건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텍사스학교기금은 블랙록이 ESG 원칙을 이유로 텍사스 기업 투자를 ‘보이콧’한 것을 문제 삼아 지난 4월 위탁한 85억달러의 기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연기금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경찰·소방관 노조 등이 연합한 비영리단체 ‘번영과 노후 안정을 위한 연합’의 팀 힐 회장은 FT에 “우리는 ESG를 지지하지 않고, ESG를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