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없어선 안돼"…'깡통' 재료에 돈뭉치 몰린다 [원자재 이슈탐구]

구리, 금 이어 깡통 재료 '주석'에 돈다발 몰린다

구리, 니켈 가격 추락 분위기 속
'주석'은 나홀로 고공행진
청동거울 재료에서 반도체 산업 필수재로
사진=게티이미지
올들어 급등했던 구리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 가격이 지난달 일제히 꺾인 가운데 주석 가격이 나 홀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 5월까진 제조업 경기 회복, 에너지 전환 수요 급증, 공급 제한 등으로 가격 상승이 기대되며 비철 금속에 자금이 쏠렸다. 지난달부터는 중국 경기가 심상치 않아진 탓에 투자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의 베팅은 주석 가격이 추가 상승한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기원전 3500년 청동기 시대부터 인류가 5000년 이상 사용한 주석은 의외로 희귀한 금속이다. 현재 3만달러를 넘는 t당 가격은 구리는 물론 니켈이나 리튬보다도 훨씬 비싸다. 지금은 청동거울이 아니라 통조림과 페인트 용기 등에 쓰이는 양철판(도금 강판)을 만드는 데 조금씩 사용된다. 전자 제품의 회로 기판 납땜과 전기 자동차, 태양광 패널 제조에도 널리 사용된다. 반도체 산업에도 많이 쓰이는 주석은 2022~2023년 반도체 업계의 수요 감소로 수급 상황이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는 가운데 주석 정광 생산국인 미얀마 등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연초대비 31% 급등한 주석 가격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주석 선물은 연초 대비 31%가량 오른 t당 3만3250달러의 가격에 거래됐다. 지난달 초 t당 3만100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주석 가격은 한 달 만에 2000달러 이상 상승했다.

LME에서 거래되는 주요 6개 비철금속 가격을 반영한 LME 지수는 지난 5월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10% 이상 하락했다. 세계 최대 금속 소비국인 중국의 수요가 부진한 탓에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구리 가격은 최근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반등했으나 지난 5월 고점에 비해 10%가량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알루미늄은 보합세, 니켈 가격은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다.

비철금속 가격 약세 원인은 재고 증가다. 중국의 재고뿐만 아니라 LME의 재고도 상반기에 116만t에서 179만t으로 증가했다. 반면 LME의 6월 말 주석 재고량은 연초에 비해 38% 감소한 4750t을 기록했다. 주석의 경우 투기성 자금이 쏠리면서 나홀로 가격이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지난달 다른 비철 금속 매수 포지션은 줄이느라 바빴지만, 주석은 유지했다. 지난주 마감 시간 기준 투자자들의 매수 포지션은 3726계약에 달했다. 2018년 LME가 트레이더 약정 보고서를 공개한 이후 주석 매수 포지션 계약이 가장 많았던 지난 4월 3781계약과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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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부족한 주석..."하반기 더 오른다"

주석 재고가 줄어든 것은 공급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투자자들은 구리와 같은 금속의 향후 공급 제약에 초점을 맞췄지만 주석의 경우 현재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석 광산이 있는 곳도 미얀마와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호주 등 소수에 불과하다. 군사정권과 소수민족 군벌이 내전을 지속 중인 미얀마는 특히 문제다. 무장 소수민족이 지배하는 미얀마 북동부 와주(Wa State)는 지난해 8월 매장량 감사를 이유로 광산 채굴을 중단시켰다. 지난 1월 수출 금지를 일부 해제했지만, 세계 3위 주석 광산인 만 마우(Man Maw) 광산은 정상화되지 않았다. 지난 2월 7일부터는 주석 정광 수출에 30%의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주석 광석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중국과의 갈등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엔 소수민족 군벌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얀마 국경 지역이 조직범죄에 자금을 지원하고 중국인을 표적으로 삼는 사이버 사기의 소굴이 됐다"며 "중국 정부가 와주 군벌(United Wa State Army)까지 단속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광산에서 주석 광석을 공급받던 중국 제련소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은 지난해 볼리비아 등 남미로부터의 주석 광석 수입량을 2021년의 약 3배로 늘리는 등 대체 수입처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역데이터모니터(TDM)에 따르면 중국은 2022~2023년 전체 주석 정광 수입량의 70% 이상인 18만t 이상을 미얀마에서 조달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지난해 전세계 주석 수요의 20%가량인 연간 7만8000t을 수출한 인도네시아도 인허가 갱신 지연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었다. 지난 1~5월 주석 수출량은 1만292t으로 전년 동기 2만3887t에 비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내 가공 산업 육성을 위해 주석 정광 수출도 이미 금지했다.반면 주석 수요는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면서 증가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전기 자동차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투자와 판매로 더욱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비철금속산업협회(CNIA) 궈닝 사무총장은 "하반기에는 주석 가격이 거시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t당 3만8000달러까지 치솟는 등 극단적인 상승세를 나타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