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덕분에 외국인들 북적… 도쿄 겐다이 ‘씁쓸한’ 흥행

7월 4~7일 열린
일본 아트페어 '도쿄 겐다이'
엔저로 '흥행 성공'
초고가 작품은 안 팔려
행사장 전경. /도쿄 겐다이 제공
“지난해보다 사람이 훨씬 많이 왔어요. 개막 첫날 우국원 작가 작품을 9만달러(약 1억2400만원)에 팔았습니다.”(한동민 탕컨템포러리아트 서울 팀장)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 아트페어 ‘도쿄 겐다이’가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올해로 두 해째를 맞는 '도쿄 겐다이'는 서울의 KIAF(한국국제아트페어)-프리즈 서울(프리즈), 아트바젤 홍콩과 싱가포르 아트SG 등에 맞서기 위해 야심차게 만들어진 아트페어다. 올해 도쿄 겐다이가 좋은 흥행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엔저(低) 현상을 기회로 삼아 미술품 쇼핑과 관광을 싼 값에 즐기려는 외국인 관람객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8일 도쿄 겐다이 참여 화랑 관계자들에 따르면 행사는 기대 이상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아트페어에 참석한 화랑 중 가장 이름값이 높은 페이스 갤러리는 9만달러에서 75만달러에 달하는 로버트 롱고의 8개 작품을 첫날 모두 팔아치웠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거점으로 하는 블룸 갤러리는 하종현의 작품(25만달러)과 요시토모 나라의 종이 작품(18만달러) 등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공식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체감 관람객도 큰 폭으로 늘었다. 도쿄 겐다이에 참석한 국내의 한 컬렉터는 “지난해보다 관람객 수가 50%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은 “엔화 약세로 인해 해외 컬렉터들의 방문이 크게 늘었으며 특히 중국에서 온 컬렉터들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도쿄 겐다이에 참석한 김에 오는 13일 열리는 대형 미술 축제인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를 함께 관람하고 돌아가겠다는 방문객도 있었다. 행사를 견학하고 온 한국화랑협회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갤러리들의 부스 전시와 전반적인 행사의 퀄리티가 높아졌는데, 지난해 저조했던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유이치로 타무라가 준비한 퍼포먼스 '카우보이 온 더 그래스'. /도쿄 겐다이 제공
다만 체감하는 열기에 비해 수억원대 고가 작품의 판매는 저조했다. 판매된 작품 대부분은 수천만원대 이하였다. 미술계 관계자는 “지난해 전체 참여 갤러리 중 절반 가량이 물갈이됐는데 빠진 화랑 중 상당수가 대형 화랑”이라며 “지난해 ‘일본에서는 비싼 작품이 잘 안 팔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형 갤러리들이 철수한 자리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갤러리들이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인 컬렉터들이 지갑을 닫은 영향이 컸다. 일반적으로 국제 아트페어에서 미술품은 달러로 거래되는데, 올해는 ‘같은 작품을 더 비싸게 주고 사는 것 같다’며 부담스러워하는 일본인 컬렉터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KIAF-프리즈’도 도쿄 겐다이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도쿄 겐다이에 참석했다가 올해는 불참한 국내 한 화랑의 대표는 “프리즈 서울에서 쓸 돈을 아껴놓겠다는 컬렉터가 많아서 올해 행사에는 부스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