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 빼다 거래소 운영비로…'한국판 FTX' 2심서 무죄 나온 이유는

2018년 개장했다 1년만에 폐업한 '코인제스트'
암호화폐 예치금 68억원 급여·세금·임차료로 소진
1심 "분리해서 관리할 임무 있었다" 징역 4년
2심 "명시적인 근거 없다"며 무죄
사진=연합뉴스
고객이 가상자산 구입 명목으로 입금한 돈을 거래소 운영비로 사용해 1심에서 징역을 받은 거래소 대표가 2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법원은 당시 기준으로는 고객 예치금을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서만 사용할 의무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맹현무 부장판사)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았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제스트' 전 모 대표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2018년 6월 문을 연 코인제스트는 한때 암호화폐 일일 거래량 국내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만 잇단 투자 유치 실패와 거액의 세금 납부, 가상자산 시장의 악화로 경영난을 겪다 이듬해 4월 거래소 문을 닫았다. 코인제스트는 이미 개장 당시 40억원의 자본금을 모두 소진하고 2018년 말경에는 5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본 상황이었다.

코인제스트는 이후 암호화폐와 원화 출금을 중단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이후 코인제스트가 운영난에 고객의 암호화폐 예치금을 직원 급여와 세금, 사무실 임차료 등으로 돌려쓴 것이 확인됐다. 피해자 974명으로부터 약 68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11월 전 대표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았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박예지 판사는 코인제스트의 이용 약관을 근거로 "전 대표는 고객 예치금을 법인의 고유재산과 엄격히 분리·관리해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업무상 임무가 있었다"고 질타했다.2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예치금을 분리해서 관리해야 하는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객과 코인제스트가 맺은 계약의 주된 내용은 수수료를 받고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예치금을 분리해 특정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인제스트는 2017년 12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가 발표한 자율규제안을 통과했다고도 홍보했다. 규제안에는 '고유재산과 교환유보재산을 분리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었다. 다만 재판부는 "협회는 거래소 사업자들이 결성한 단체에 불과하다"며 "단체 내부 권고사항에 법적인 구속력을 부여할 근거는 없다"고 일축했다.

피해자들이 수 차례 고소했던 전 대표는 앞서 서울서부지법에서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다만 법인 계좌로 받은 돈의 목적이나 용도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 무죄를 받았다. 해당 사건은 2021년 8월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이달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고려하면 전 대표 사례는 피해자들 입장에서 불만을 제기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가상자산법은 이용자의 예치금을 법인 고유재산과 분리해 관리할 것을 엄격하게 규정한다.

한편 검찰은 전 대표 사건을 지난달 대법원에 상소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상자산법은 과거 사건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며 "유사 사건으로 무죄가 나왔다면 대법원에서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