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실업급여인지, 월급인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가 있다.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이 나온다. ARS 전화를 몇 시간 기다려 겨우 몇 분 통화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컴맹’인 탓에 인터넷상에서 신청서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

영화는 복지 행정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회복지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하는 얌체족도 수두룩하다. 고용노동부의 통계 자료를 보면 1999년부터 2023년까지 24년간 실업급여를 매년 한 번씩, 24번 타간 사례가 있다. 그것도 같은 직장에서 말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현행법상 실업급여는 180일간 고용보험료를 냈으면 수령 자격이 생긴다. 수령 기간은 나이와 일한 기간에 따라 4~9개월까지다.따라서 이 사람은 1년 단위로 8개월은 직장에서 봉급을 받고 퇴직 후 나머지 4개월간은 실업급여를 받는 과정을 매년 되풀이해 온 것이다. 말이 실업급여지 이 정도로 정기적으로 타 갔다면 월급이라고 봐야 한다. 가히 도덕적 해이의 ‘끝판왕’이다. 사업주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만큼 노사 간 짬짜미도 비난 대상이다.

실업급여의 재원은 노사가 월급의 0.9%씩 공동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다. 이것만 놓고 보면 이런 반복적 수령이 일견 세금 도둑질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속을 뜯어 보면 혈세 도둑질이다. 문재인 정부 때 실업급여의 수령 기간 연장, 하한율 상향과 하한액의 기준인 최저임금 급등으로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바닥나면서 공공자금관리기금 등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가 11만 명을 넘어서면서 정부가 제도 손질에 나섰다고 한다. 5년간 3회 이상 반복 수급자를 대상으로 최대 50% 감액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문 정부 때인 2021년 발의돼 3년 가까이 국회에서 잠자다가 결국 폐기된 전례가 있다. 고용부는 연내 통과를 목표로 재발의한다고 하지만, 국회 정쟁과 노동계 반발을 감안할 때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