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모임을 네 것으로 만들지 말라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너희들이랑 안 놀아”라고 소리치며 대문을 세게 닫고 집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다. 마루에 올라서는 나를 아버지가 더 큰소리로 불러세우며 “공은 왜 들고 오느냐. 애들한테 당장 갖다 주라”고 야단쳤다. 대문 밖에서 기다리는 두 친구에게 공을 건네주고 바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공을 가지고 온 이유를 물었다. 공은 아버지가 서울에 다녀오며 사다 준 거였다. 찰 고무로 만든 주머니에 공기를 넣어 부풀린 공은 모두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천이나 짚 뭉치로 만든 공을 찼다. 가끔은 돼지 오줌보에다 바람을 넣은 공을 발로 차면서 놀기도 했다. 아버지가 사다 준 찰 고무공은 획기적인 것이어서 친구들이 매일 집으로 찾아왔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라고 준 공을 네가 왜 도로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제 것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제 공인데 저한테 패스하지 않고 잘 차는 지네들끼리만 공을 가지고 놀길래 가지고 왔어요”라고 설명했다. 담배를 피워 뜸 들인 아버지가 “친구들 모임에 줬으면 그 공은 더는 네 공이 아니다. 그 모임의 공이다. 네가 친구 모임에 준 공을 아직 네 공으로 여기는 건 잘못이다. 공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네가 공을 가지고 나가야 모이고 네가 공을 가지고 들어오면 흩어지는 모임이면 그건 네 모임이지 그들의 모임이 아니다. 모임을 네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며칠 지나 공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가 집으로 불러 다시 나무랐다. 공놀이하며 두 친구 하고만 공을 주고받는 것을 특히 지적했다. “저 공은 언젠가는 닳아 없어질 거다. 앞으로 네가 공을 다시 갖다 주지 않으면 어찌 되겠느냐?”고 물은 아버지는 “여럿이 모인 데서 두 친구 하고만 가까이 지내는 건 위험하다. 공 없이도 그렇게 가깝게 지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라. 모임 안에 다른 모임을 만드는 일은 잘못하는 일이다. 정 네 얘기를 잘 들어줄 친구를 구하려면 커서 그런 네 회사를 만들라”라고 했다.

말끝에 아버지는 그날도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아이라고 사정을 두지 않았다. 지금도 토씨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훗날에도 자주 말씀하신 때문이다. 아버지는 ‘주이불비(周而不比)’를 들었다. 주이불비는 “군자는 친밀하게 지내되 사리사욕을 위하여 결탁하지 않고 소인은 사리사욕을 위하여 결탁하되 인간적으로 친밀하지는 않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는 공자 말씀에서 비롯했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온다. “여기서 ‘두루 주(周)’는 본디 논에 벼가 심긴 모습의 상형문자다. ‘친밀하다’는 뜻이고 보편(普遍), 즉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견줄 비(比)’는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비교한다’라는 뜻이다. 곧 편당(偏黨)을 뜻한다”라고 아버지는 구분 지어 설명했다. 모두 사람과 가까이 지낸다는 뜻이나 주(周)는 공(公)이고 비(比)는 ‘결탁하다’란 뜻을 지닌 사(私)라는 의미이다. 훗날에 자세하게 알게 되긴 했지만, 아버지가 두 친구하고만 공놀이를 하는 것을 경계한 이유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산다. 나를 먼저 생각하느냐 우리를 먼저 생각하느냐가 기준이다. 공자는 그 기준을 주이불비로 세웠다”고 평가했다. 특히 “사람이 만나다 보면 자연히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에게 더 믿음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심을 가지고 편을 가르지 말아야 한다. 너를 빼고 공을 잘 차는 자기들끼리 공을 주고받는 것에 너도 화내지 않았느냐?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라고 몇 번이나 일깨워 줬다.“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능력이고 그게 사회성이다”라고 아버지는 가르쳤다. 사회성은 공감력에서 나온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게 더 다가서는 방법이 공감력을 키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어릴 때부터 손주들에게도 꼭 갖추게 해야 할 무엇보다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